대학생 때 난 취업을 열심히 준비하면서 한편으로 취업에 실패하길 바랐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직장인이 된 주변 지인 중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다들 무거운 무언가에 눌린 채 살아가는 것 같았다. 수십 년을 매일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상사들의 기에 납작하게 눌려 하루하루를 견디는 듯했다. 그들은 가슴 설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쉽게 감탄하는 일도 없다고 했다. 자아가 흐릿해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나는 졸업을 하면 모든 행복이 끝날 것만 같았다.
막 학기를 앞두고 어학연수를 신청했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놀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미련 없이 떠났다. 실컷 놀다 와야지 마음먹고 간 그곳에서 의외의 한 마디를 맞닥뜨렸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문장이었다.
“꿈을 생각하면 설레.”
그곳에서 만나 친하게 지냈던 언니가 건넨 말이다. 당시 그녀는 마흔 살이었다. 직장과 대학원을 병행하면서 하고 있던 공부를 외국에서 배워보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했다.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생계를 잠시 멈추고 어학연수에 온 것도 충분히 멋있는데, 어느 날 그녀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며 갑작스럽게 말을 전했다. 퇴사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외국 교수가 될 거라는 꿈이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다니고 있는 직장도 어렵게 들어와 십오 년 이상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 왔다는데, 그걸 포기하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말이 신기했다. 포기를 다짐한 용기도 신기했고, 직장인이 새로운 꿈을 꾼다는 것도 낯설게 들렸다. 취업을 하면 안정적이지만 반복되는 일상을 그저 버티면서 지내는 거 아니었나. 어른들도 장래 희망이 있을 수가 있나. ‘커서 이런 사람이 될 거야.’라는 다짐은 10대 때 한 게 마지막이었는데 언니는 왜 지금도 그 다짐을 하고 있나. 어렸던 나는 언니가 그저 의문이었다.
나의 어리둥절함이 무색하게 언니는 그 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다시 공부하는. 온전히 목표를 위해 하루를 채우는 자기 주도적인 학습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어보니, 목표가 생긴 후로 아침에 눈 뜨는 일이 설렌다고 했다. 꿈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뛰게 한다고 했다. 새로운 지향점이 주는 동기부여가 오랜만이라 반갑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언니의 눈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날 난 기숙사에 돌아가 언니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꿈을 생각하면 설렌다는 언니의 한 마디는 내게 어떤 해방감을 주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나 낯선 것에 대한 도전 따위의 것들은 졸업하면 모두 사라질 것만 같았는데, 지난한 일상에 갇힐 줄로만 믿었는데, 내가 보고 느낀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언니는 내 좁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었고,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오해를 깨트려주었다. 직장인이 되어도 가슴 뛰는 일이 생길 수 있고, 생기지 않는다면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언제든지 장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주변 어른 중 언니만이 유일하게 희망을 보여주었다.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롯데월드 같던 그녀를 만나 어른의 세상이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도 회사 생활이 버거울 때면 그녀를 떠올린다. 이 지난한 일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난 언제라도 가슴 뛰게 할 꿈을 가질 수 있고, 지금이라도 사소한 목표를 만들어 도전해보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덕분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것을 하기까지 망설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가슴 뛰는 일도 생겼다. 작은 성취도 이뤄냈다. 이제는 나의 십년 후가 기대된다. 오늘도 꿈을 꾸기 좋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