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과 친절함 중에 선택하라면

착한 사람이 계속 착할 수 있도록

by 수신

“누나, 세상은 착하게 살 필요가 없어.”


몇 년 전, 아는 동생과 술을 마시다 들은 말이다. 나보다 어린놈(?)이 세상을 다 산 것처럼 말하는 게 조금 우스웠지만, 왠지 표정이 슬퍼 보여 잠자코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자신은 상처 주기 싫어서 조심히 말을 고르고 언제나 그들에게 다정하려 노력하는데, 대다수의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고. 동생의 친절과 배려는 장점이 아닌 약점이 되고 자신은 호인이 아닌 호구가 되기 일쑤였다고 했다. 그런 스스로가 바보였다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 대사가 진짜라면서 열변을 토했다. 누나도 착하게 살면 손해니까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라는 훈수도 두면서.


직장인이 되고서야 동생의 말에 공감했다. 사회생활은 전쟁터 같았다. 배려를 본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고 더 나아가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 점점 호구 취급을 받는 것만 같았다. 상처는 차곡차곡 쌓였고 마음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사람을 쉽게 미워했다. 금사빠가 아닌 금증빠(금방 증오에 빠짐)랄까. 인류애가 다 사라진 듯했다. 정 없는 현대인이 바로 나였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땐 친절함을 선택해라.」


영화 <원더>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 속 학교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이달의 격언으로 소개한 문장이다. 문장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듣자마자 아차, 싶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옳고 그름을 따지는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관계가 삐거덕거릴 때마다, 친절함은 지우고 냉정한 판단부터 하려고 노력했다. 그럴 수 있다는 관용 대신 서로의 잘잘못부터 따지기 바빴다. 그리고 판단은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내렸다. 내가 맞고 상대가 틀리다고 결론지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멀어지려 애썼다. 착하게 굴면 호구가 된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어리석게 행동했다. 상처를 받을까 봐 앞서 나를 이기심으로 무장했다.


영화를 보고 반성했다. 나는 여태 받은 상처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상처를 받으면 현명하게 대처할 생각은 못 하고, 모든 사람을 함부로 구분 짓고 판단했다. 이성적이고 이기적이어야 상처받지 않는다고 믿었기에. 그리고는 나부터 친절한 사람이 아니면서, 세상이 내게 친절하지 않다고 투덜대기만 했다. 일부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내게 친절했던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부끄럽다. 영화 속에서 어린 학생이 저 문장을 따라 읽는 이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는 바로 저 문장 속에 있다고. 사람들을 옳고 그름의 자세가 아니라, 친절한 태도로 대해야 한다고. 그래야 세상도 내게 친절해진다고 말이다.


옳음과 친절함. 옳음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나쁜 사람에게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나도 내게 크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다 이해하고 품어줄 아량까지는 없다. 단, 세상을 호인을 호구 취급하는 곳이라 믿을 것인지 아님 호인이 그대로 호인인 세상이도록 노력할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기를 원한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해져야 한다. 그리고 옳음과 친절함 중 후자의 태도가 그 일을 도와줄 것이다. 친절함은 우리를 구분 짓지 않는다. 나의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연결한다. 그것은 사랑으로 쉽게 번진다. 반면 옳음은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이다. 누가 정답이고 오답인지를 가리는 일이다. 내가 맞고 상대가 틀리다고, 우린 다르다고 구분 짓는 일이다. 세상은 더 차가워질 것이다.


‘옳음’이란 것은 결국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 생각한다. 내가 믿었던 옳음이 ‘유일한 정답’이 아니라 그저 ‘또 다른 답’일 수 있다. 아니, 애초에 답이라고 정의할 수 없을지도. 착하면 호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도 그 문장을 굳게 믿었다. 그런데 내가 이기적으로 변한다고 세상이 친절해지는 게 아니었다. 상처받을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착한 사람을 호구 취급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뿐이었다. 친절함이 사라질수록 외로움이 생겨난다. 세상은 자꾸 불친절해진다. 그러니까 함부로 사람들을 옳고 그름으로 따지지 말아야지. 상처를 친절함으로 회복해야지. 나부터 친절하면 세상도 내게 친절해질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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