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계절

너에게 쓰는 편지

by 수신

2015년 초봄, 우린 외국인 문화 축제에서 만났어. 아빠를 따라 무작정 휴학하고 간 중국의 어느 소도시에서 열린 이 축제는 몇 안 되는 유학생들이 모이는 유일한 행사였지. 나를 포함해 다섯 명뿐인 한국인들은 작은 부스를 운영했어. 친구들은 한복을 빌려 입고 포토 이벤트를 열었고, 나이 많은 아주머니 유학생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시식행사를 했어. 막 유학 온 나는 마트에서 겨우 구한 제기로 단조로운 게임을 준비했고 신나는 케이팝 음악들을 틀어둠으로써 게임의 지난함을 무마하려 노력했어. 이 작은 도시에도 한국 아이돌들의 영향력이 퍼지길 바라면서 말야.


너는 우산을 쓰고 엄마와 팔짱을 낀 채로 수줍게 다가왔어.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던 넌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을 마주쳤지. 그러고는 대뜸 핸드폰을 내밀었어. 배경화면에 있던 아이돌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들의 팬이라고 웃으며 말했지. 그 아이돌은 내가 10년 전 열렬히 사랑했던 가수였어. 반가운 마음에 호응을 했고, 우린 마치 친한 사이인 듯 손을 맞잡고 방방 뛰었어. 아무런 대화도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과 하이파이브로 서로를 환영했어. 그때 난 우리가 친해질 거라 짐작했는데, 너도 그랬을까.


그 후 우린 매주 만났어. 넌 평일마다 연락을 해왔고 토요일에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지. 이곳저곳을 구경 시켜 주었어. 한국과 비슷한 곳과 다른 곳을 돌아다니며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지. 네가 할 줄 아는 언어는 모국어인 중국어뿐이고, 나는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번역기를 통해 한 문장씩 대화를 나눴어. 하고 싶은 말을 번역기에 돌리곤 번역된 문장을 서로에게 보여주면서 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답답하고 우습고 대단하기까지 한 우리의 모습이 그땐 참 진지했어. 너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었거든. 하고 싶은 말을 즉각 꺼내지 못해 서둘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번역기에 모국어를 적고는 너의 언어로 표현된 내 마음을 보여주기까지. 그 지리멸렬한 과정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어. 마냥 설레고 즐거워서 계속 하고 싶은 행위였어.


시간이 흘러 내가 중국어를 익히고 우리가 도구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린 꽤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있었어. 좋아하는 상대 문화권의 음식, 음악, 장소 등 이런 것들만 앞다투어 말하는 대화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 우정, 인생 등 좀 더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 나누는 관계가 되었지. 언어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해서 마음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니더라. 우린 생각보다 많이 닮았고 닮은 모습이 서로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었어. 네가 한국인이었다면, 내가 중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종종 해보곤 했지. 그럼 우린 영혼의 메이트가 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욕심도 내보면서 말이야.


“우린 스스로 강해져야 해.”


한참 사랑 문제로 쉽게 얼룩지는 마음을 가졌던 내게 네가 건네줬던 말이야. 다른 누구에게 기대선 안 된다고. 특히 상대가 남자친구라면 더더욱. 그 말을 하는 너의 모습은 단호하고 단단했어. 넌 여태 그런 신념으로 강하게 커왔구나. 그래서 이렇게 든든했구나 싶었지. 덕분에 많이 힘이 났고 지금도 네가 해준 말을 종종 떠올려. 내가 존재하는 방식의 방향은 이 문장이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가끔은 그때로 돌아가 너를 어루만져주고 싶어. 너와 결혼하기로 했던 남자가 불가해한 이유로 너를 떠나갔을 때, 넌 절대 울지 않았어. 눈물을 보이는 건 시련 앞에 지는 거라고 말했고, 강해지기 위해선 설움을 꾹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세웠지. 자주 가는 한국 음식점에서 고기를 허겁지겁 구우며 애써 웃는 너를 난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고, 불판만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게 너의 믿음이라면 그걸 존중한다는 마음으로, 함부로 분노하고 너를 연민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말이야. 그렇지만 지금은 그냥 너에게 울어도 된다고 한 마디 건네줄 걸 하는 후회가 들어. 나는 너에게 든든한 친구였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넌 나에게 한없이 등대 같은 존재였는데, 난 너한테 그 정도의 불빛을 뿜어주는 사람이었을까.


한국에 완전히 돌아오고 몇 년 후, 넌 초록색 메신저로 내게 결혼 소식을 알렸어. 이미 날짜는 확정이 된 상태였고 나에게 여유가 된다면 꼭 와달라면서 초대를 했어. 난 당시 여유가 없는 학생이었기에 축하의 답장만 보낼 수 있었지. 네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난 한 톨의 의심도 없이 믿는다고. 그 사람이 널 행복하고 안전하게 해줄 거란 걸, 넌 어김없이 현명하고 지혜롭게 가정을 꾸려나갈 아이라는 걸 확신한다고. 넌 강하고 똑똑한 아이니까.


오직 너와의 연락을 위해 남겨둔 메신저는 이제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일주일에서 한 달로, 한 달에서 6개월로, 자꾸만 길어지는 우리의 연락텀은 그때의 기억을 흐릿하게 만드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삶의 궤도를 내달리느라 그렇겠지. 가끔은 너의 프로필에 놀러 가 가족사진들을 구경한단다. 좋아하던 아이돌의 사진은 내려가고, 남편의 똘망 똘망한 눈을 꼭 닮고, 웃을 때 기분 좋게 찡그려지는 콧등을 가진 아기의 사진만이 차지하고 있지. 아주 긴 머리를 고수하던 넌 육아를 위해 숏컷으로 잘랐고, 오랜 세월 유지하던 가지런한 앞머리도 걸리적거리는 듯 옆으로 넘겨버렸어. 유치원 선생님과 엄마, 아내, 딸, 며느리 역할을 다 해내는 넌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고 풍족해 보여.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은 모습에 기분이 참 묘하고 낯설어. 그렇지만 감동도 함께 몰려온단다. 우리가 이렇게 커서 다른 방향으로 행복해하고 있구나. 너는 너가 말한 대로 그렇게 멋지게 살고 있구나 싶어서. 멀리서 존경하고 동경하고 있어.


“너를 알게 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야.”


이런 말을 들은 나야말로 더 없는 행운아라는 걸 너는 알까. 사진첩에 저장해둔 너의 메시지는 내게 마법의 주문 같은 무엇이고 조용히 세 번 정도 읽고 나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환해져. 나도 누군가에게 이토록 소중한 존재구나 싶어서.


어느덧 2021년 10월이야. 우리가 못 본지도 6년이 넘었네.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항상 노래를 녹음해 주고받던 우리만의 관습을 기억하니.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 노래를 말이야. 그 날이 돌아오면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떠올리고 그리워했잖니. 올해도 잊지 않았으면 해. 10월 31일이 언젠가 우리의 유일한 소통의 날이 될지라도, 그 행위는 계속 되길 바라. 올해는 너와 아이가 함께 부른 노래를 듣고 싶은데, 오랜만에 너에게 부탁을 해도 될까.



* 월간에세이 11월호 기고글 | 잊혀진 계절

(추가 퇴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