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매일 꿈을 꾼다. 아주 생생하게. 컬러감 가득한 현실 같다. 그러나 그곳은 어딘가 뒤틀린 세계다. 말이 되지 않는 현상이 한두 개씩 벌어지고, 그것들이 자연스럽다. 나 또한 그것들을 익숙하게 여기는 세상.
오늘의 꿈속 배경은 또 일산 아파트였다. 독립한지 6년째고 우리 집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음에도 꿈속 나의 집은 항상 그곳이다. 10년을 넘게 살아서 그런가, 훤히 보이듯 동네가 꿈에서 재현된다. 일산에서 살 때, 집안에서 종종 바라보곤 했던 풍경이 있다. 부엌에 나있는 작은 창으로 내다보던 바깥이다. 정면으로는 청록색 테두리의 앞 동이 있고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틀면 전철역이 있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던 풍경의 밀도를 여전히 기억한다. 오늘 꿈의 뒤틀림의 주인공은 아파트. 바로 앞 동이 거꾸로 뒤집혀있었다. 뒤집힌 채로 땅 위에서 솟아난 건지 아니면 하늘에 매달려있던 건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눈에 보인 건 1층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집은 19층이었으니 마주 보는 건 저층이었겠지. 작은 직육면체 속엔 tv가 내뿜는 빛으로 환한 거실과 분주하게 움직이던 집주인들이었다. 그 사람들도 우리가 거꾸로 보이겠지? 그 모습이 익숙하려나. 혹시 당신들도 우리를 비정상이라 여기나요. 그렇다면 누구의 세계가 정상인 걸까.
보통 꿈속에선 이런 이상함이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왜 뒤집어져 있지?' 의아했다. 엄마가 이유를 설명해 주었지만 난 이해할 수 없었고, 어리둥절한 채로 함께 밖으로 나갔다. 실제 일산 아파트 뒤쪽으로 걸으면 단지를 벗어나는 작은 통로가 나온다. 통로를 통과하면 오른 편에 두 개의 상가 건물이 있다. 꿈속에서 그 주변은 어딘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핑크색 노을이 지고 있는 오후였고, 지면에서 연기가 폴폴 흘러나왔다. 왠지 SF 영화 같던 장면. 정면으로 보이는 상가를 오른쪽에 끼고 걸었는데 문득 시야가 텅 비어버렸다. 원래라면 보여야 할 전철역은 온데간데없었다. 난데없는 텅 빔이었다. 눈에 거슬리는 것 하나 없이 핑크색 하늘만 펼쳐지던 거리. 땅이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거리가 끊긴 걸까? 아니면 혹시 그곳은 벼랑이었나. 한 걸음만 내디디면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는, 그래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 엄마는 내가 그쪽으로 가지 않도록 슬며시 내 팔뚝을 잡았고, 나 또한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벼랑,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재수생 시절, 대학 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외출했다가 집에 오는 길에 어느 대학교에서 합격 전화를 받았고 바로 엄마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엄마는 안도하며 그날 꾼 꿈을 얘기했다. '혜수 네가 베란다 앞에 서있더니 갑자기 그 너머로 떨어지는 거야. 엄마가 깜짝 놀라서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바로 앞에 발판 같은 게 있었나봐. 네가 그냥 거기 위에 서 있더라고.' 벼랑인 줄 알았던 베란다 너머가 사실은 아니었고, 안전한 지지대가 자리하고 있었더라는. 꿈속에서도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는데 현실에서도 대학 합격이라는 안도할 일이 생긴 것이다. 왜 나는 꿈속에서 베란다 앞을 서성였을까? 안전한 것을 알고 베란다를 넘어간 걸까? 꿈속의 내가 궁금하다. 그걸 보고 있던 엄마의 마음도. 합격을 기다리는 내내 사실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은 내가 아니라 엄마가 더 느껴왔던 걸지도 몰라.
몇 년째 꿈을 매일 꾸는 것을 나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사실에 유별나게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없었지만, 매일 꿈을 꾸는 일이 수면의 질이 낮다는 뜻임을 알게 된 후로는 괜히 의식하기 시작했다. 성정이 많이 예민한가, 스트레스가 심한가 스스로를 걱정하기도 했고, 모든 피곤함의 원인이 꿈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오히려 괴롭게 하는 것 같아서 그냥 그런가보다 넘기기로 했고, 가끔은 꿈꾸는 일이 재밌다고 생각한다. 아주 가끔. 뭐, 예를 들어 친구들이랑 게임 캐릭터가 되어 사막을 누빈다거나, 밤하늘을 멋지게 날아다니는 꿈같은 것. 하지만 거의 드물지. 왜냐면 대게 나의 꿈들은 어딘가 눅진하고 답답하고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깨고 나면 찝찝함만 나는 꿈. 찝찝함이 얼마나 유지되느냐에 따라 그날 하루의 기분이 좌지우지되기도 하고. 아무튼 왜 이런 이야기를 썼지. 오늘 꾼 꿈은 정말 별것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회사 일도 무난하고 걱정할 일 하나 없는 주간인데, 작은 업무도 크게 느껴졌고 처서를 맞이했음에도 무덥다고 느꼈다. 이런 날엔 퇴근하고 서점에 가야지. 읽고 싶었던 책의 재고가 드디어 풀렸단다. 책등을 매만지고 표지를 살피며 마음을 다독이자.
22.08.24(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