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by 수신


어제도 러닝은 실패했다. 피곤함이 온몸을 덮쳤기 때문이다. 그것이 관절 구석구석에 녹지 않고 쌓여있다. 마치 누런 치석처럼. 세심하게 돌보지 않으면 계속 축적될 것이다. 잇몸이, 아니 내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러닝은 팀원이 추천한 운동이다. 런데이 어플 도움을 받아 격일로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운동 효과가 좋다고 한다. 몇 년 전 3분 뛰기에 실패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이번엔 30분도 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보다 녹슨 몸은 생각 못 하고 곧장 어플을 다운 받고 장비를 사 왔다. 무릎 보호대와 스포츠 양말. 대단하게 들리지만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사왔다. 전문가용이 아니라는 뜻, 그것은 언제라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다. 자신감은 차올랐지만 한편으로 금세 관둘 스스로를 대비했다.



첫날은 장비를 잘못 사서, 둘째 날은 중국어 공부하려고, 어제는 피곤해서 달리기를 안 했다. 전날 일 내내 생각했다. '퇴근하고 달리기해야지.' 결심을 열 번은 했다. 또 다른 팀원이 몸이 두 개여도 모자라는 인생을 산다는 얘기를 듣고 자극받았다. 그처럼 땀 흘리는 삶을 살아보자. 귀로만 듣던 갓생을 내가 한번 살아보자. 생각과는 다르게 집에 돌아와 샐러드를 먹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양배추를 찍은 포크를 자꾸 떨어뜨렸다. 잠깐 눈을 감는다는 게 한 시간의 여정이 되어버렸고, 눈 떠보니 10시였다. 달리기는 고사하고 씻는 것도 힘겨운 컨디션이었다. 진짜로 열심히 살려고 다짐했는데. 어제의 일기장도 반성문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고 요즘 계속 되뇐다.) 시간이 아깝다는 게 뭔지 알겠기에. 젊음을 낭비할까 무서워서. 흥청과 망청 사이에 끼인 채로 허우적대다가 중년을 맞이할까 두렵다. 그래서 '이거라도 하자!'의 목록을 만들었고, 범위는 아직 터무니없이 좁다. 최소한의 것들을 최선을 다해 유지 중이다. 여전히 내 이상과는 거리가 멀고, 난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 자주 반성을 하고 가끔 자책을 한다. 샤워기로도 씻기지 않는 얼룩덜룩한 마음을 애써 덜어내면서. 반성문이 되어버린 일기장이 칭찬 일기로 바뀔 수 있도록 무언가를 길러야 한다. 다짐으로 끝나는 반성 일기를, 미래형으로만 끝나는 마지막 문장들을 그만 쓰고 싶다.



조용해 보여도 마음속에 불이 있으면 된다고 했다. 어디서 들었다. 겉으로는 파동 하나 없이 잔잔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내면에 품은 것이 뜨거우면 해낼 수 있다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열망하는 것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들을 한결같이 좇는 사람들. 꾸준히 뜨거운 사람들. 그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내 심지에도 번쩍 스파크가 튄다. 미지근한 불의 온도가 차츰 뜨거워진다. 반짝거리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덩달아 반짝이지. 직접 만난 적은 없어도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느껴지는 빛이 있다. 조악해 보여도 찬란한 마음. 결국은 매끄럽게 다듬어질 것. 완성될 것.



그런 불을 품은 마음을 정용준 작가는 '열심'이라고 했다. 더울 열, 마음 심. 더운 마음. 혹은 더울 마음. 꿈을 꾸는 지금도 덥고, 꿈을 이뤄낼 미래도 더울 테니까. 생각보다 '열심'을 품는 건 어렵지 않고, 그렇다고 쉽지도 않다. 누구나 품을 수 있고, 언제든지 식을 수 있다. 무엇이든 '꾸준함'이 문제다. 나부끼는 바람에 휙 꺼져버릴 불꽃을 잘 관리하는 일. 그러니까 부지런히 부채질을 해주고, 꺼지기 전에 불쏘시개를 던져줘야 한다. 내게는 불꽃이 남아있는가. 다행히 남아있다. 다만 활활 타오르지 못할 뿐. 약한 체력에 시들고, 바쁜 시간에 시들고, 돈에 시든다. 무엇보다 내 게으름이 시들게 하지. 반성문은 이 글로 끝내고 싶다. 오늘은 달리기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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