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베스트셀러

2006.11.1

by 물구나무서기


키워드 '베스트셀러' 작문인데

해커스토익 책으로 빙의?해서 썼다.


11년 전에 쓴 이 글을 읽고서 놀란 것은

해커스토익이 11년이 지난 지금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씁쓸하다.




난‘해커스 토익’이다. 요즘 아주 잘 나가는 책이다. 사람들은 나를 ‘베스트셀러’라고 부르곤 한다. 그렇다. 나는 베스트셀러다. 움하하. 교보문고, 영풍문고 서울 주요 도심에 있는 대형서점 어디를 가든 난 항상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화려한 조명 때문에 좀 뜨겁긴 하지만 괜찮다. 베스트셀러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요즘 나를 찾는 사람은 그 연령대가 이전보다 더 다양해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주로 나를 선택했지만 최근엔 양복에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뿐만 아니라 가끔은 초중고생들도 내 이름을 찾는다. 아, 정말 이 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는구나. 나는 내 인기의 이유를 안다.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원하는 건 높은 토익점수다. 토익점수가 인생을 가로막기도 하고 인생길을 열어주기도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위풍당당하게나의 파란색 외투(표지)를 뽐내고 있다. ‘1’이라고 써진 숫자 아래에서.


그런데 요즘 내 심기를 거스르는 얘기가 종종 들려오고 있다. 토익을 대체할 수 있는 한국의 토종 영어시험을 만든대나 뭐래나. 하하, 가소롭다. 마음대로 해라. 쉽지 않을 거다. 텝스도 내 앞에선 비리비리하고 자꾸 이상한 이름의 영어시험을 만들어내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리고 요즘 무슨 ‘상상예찬’ ‘우리 회사는 당신의 토익 성적이 아니라 당신의 토요일이 궁금합니다’라고 하면서 마치 토익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데 이것도 우습다. 그렇게 말하면서 결국 중요한 전형요소로 반영되는 건 토익점수 아닌가. 수험생들이 바보가 아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나를 열어보고 나를 사가는 사람들은 줄지 않는다. 난 아직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내가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한국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변하더라도 인사담당자가 나를 원하고 취업지망생 및 직장인들은 나를 필요로 한다. 내 생각엔 당분간은, 계속 그럴 것이다. 신입사원의 독창성과 창의력을 본다고 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안다. 그 말은 회사 이미지를 위한 포장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현명한 학생들은 나를 들고 도서관으로 간다. 그리고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후 취업에 성공하는 경우를 더 많이 봤다. 난 베스트셀러다. 내가 그 지위를 잃을 때나를 지금 이렇게 원하는 한국사회도 무언가 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자리를 다른 이름의 토익책이 차지하는 경우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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