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원격 수업 대응기, 열 번째 이야기
9월 말 10월 초에 예산이 내려온다. 한 학급당 417,000원. 원격 수업 장비를 완전히 갖추기에는 부족하지만 한 교실 당 한 컴퓨터가 보급되었다고 가정할 때 교육부에서 이야기하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 환경을 구현할 수 있을만한 예산이다. 좀 발품은 팔아야겠지만...
진짜 문제는 장비가 아니다. 교사들이다. 사실 저런 장비가 없어도 헤드셋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 실시간 쌍방향 원격 수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편안한 것에 안주하는 교사들의 특성상, 장비를 쥐어준다고 그것이 가능할까? 비현실적으로 협조적이었던 우리 학교에서도 학기 초에는 '이러다 내년에 다른 학교로 강제 전출당하는 거 아닌지 몰라'할 때가 몇 번 있었다. 다른 학교였다면 벌써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밥도 혼자 먹고 여기저기 전출을 알아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학교에서도 받아 주지 않고...
소설 쓰는 것 같지만 교단 뒤편의 분위기가 그렇다. 내가 초임이었던 시절 중학교에서 방과 후를 맡았는데 전 교사에게 '방과 후를 개설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학교가 뒤집힌 적이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당시 방과 후는 대단히 예산과 규모가 큰 사업이었다. 교장 교감은 모든 교사가 방과 후를 다 개설하기 원했고 교육청에서도 적어도 80% 이상의 방과 후 개설을 원했다. 이걸 교육지원청에 보고까지 해야 하고 그걸로 학교 평가를 한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후진적이구나 하겠지만 당시는 그랬다. 1학기 때는 내가 신규이고 부장도 없어서 정말 무산되어 강좌 개설률이 30%였는데 그것 때문에 교육청 장학사가 학교에 엄청 전화를 했다. 국가적인 사업이니 만큼 제발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2학기 때는 엑셀력을 업그레이드하고 부장도 새로 왔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해보아도 외부 강사로 모든 걸 퉁치기는 어렵다. 결국 모든 교사가 방과 후 강좌를 개설해야 아이들을 수용 가능하고 나는 전체 메시지로 '방과 후를 개설해 주십사'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는 각 교무실을 불타오르게 하고 30분도 안 되어서 전화기에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당장 사과하러 오세요!
격앙된 3학년 부장의 목소리가 부임하신 지 몇 주 안 된 새로 오신 부장님의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마음 약한 부장님은 차마 부원은 보낼 수 없었던지 본인이 가시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바로 다음 시간 수업이 있었지만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마음을 정리하고 3학년 교무실로 달려갔다. 내가 잘못한 것이라면 내가 책임을 져야지.
'지금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
'연말에 3학년이 얼마나 바쁜데 지금 장난해?'
'새파랗게 어린 게 건방지게 어디다 전체 메시지야?'
검은 결재판에 넣어 한분 한분 공손히 결재라도 받으라는 것인가? 나는 그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잠시 고민해 보았다. 교무실에 자욱한 먼지가 교사들의 홧김에 여기저기 뿜어져 나를 위협했다.
'저 왔어요. 저한테 말씀하세요.'
정작 당사자가 오자 교사들은 일시 정지했다. 진짜 올 줄은 몰랐던 걸까? 다들 화내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고 3학년 부장만이 '3학년이 연말에 수업도 안 하는데 지금 방과 후를 개설하라고 하면 어쩌란 것이냐. 가뜩이나 중3 입시가 바쁜 시기인데...' 하며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수업도 안 하고 방과 후도 안 하겠다니 3학년 교사가 나라를 구한 것이구나. 결국 일주일에 2번 칼퇴를 못하는 것에 대한 반발임을 깨닫고 있는데 주변의 교사들은 갑자기 수업을 간다며 짐을 싸고 흩어졌다. 3학년 부장도 수업이 있다며 문도 안 잠그고 나가고 신기하게도 그 교무실의 모든 교사가 수업인지 나와 부장님만 휑뎅그레 남아 있었다.
결국 이 사건은 교장이 반발하는 교사들을 죄다 교장실에 불러 면담을 하면서 해결되었고 나는 학교 공식 왕따가 되었다. 재미있는 건 가장 방과 후 개설에 반대했던 3학년 교사와 학생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중3 입시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입시 기간과 입시 끝나고 할 게 없던 아이들은 그나마 재미있는 방과 후에 열심히 참여하였고 출석률도 무척 높았다.
'근데, 선생님 잘했는데 앞으로는 나대지 마. 여기저기 다 선생님만 씹어 대고 있어.'
올해 오셨다는 3학년 선생님이 넌지시 언질 해주었다. 나는 '슈퍼 스타 되고 좋네요'라고 이야기했지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최악이었던 나와는 달리 그 해 2학기의 방과 후는 참여율 99%로 참 잘 한 선례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씹어 대던 교사들은 연말쯤 되자 갑자기 친절하게 '내년에도 방과 후를 하겠지? 딱 적성에 맞네'하며 덕담을 했고 나는 그걸 다 씹고 '부적응 내신'을 썼다.
도망으로 사건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적응 내신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로 갈 수 있었다. 부적응으로 1년 만에 전출하는 제도는 다음 해에 사라지고 고등학교 교사가 남아돌면서 나와 같이 임용되었던 대부분의 교사들은 계속 중학교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뭐 나는 그 뒤 고등학교에서도 지지고 볶다가 어찌어찌 전과를 해서 이 학교로 왔지만...
내가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사과'해야 할 교사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학교들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어려운 것은 바로 그런 교사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내가 다른 학교에서 똑같이 원격 수업 담당자였다면 나는 전 교무실을 돌며 사과 순례를 해야 했을 거고, 학교 공식 슈퍼 왕따가 되었을 거다. 한 번 낙인이 찍히면 생각보다 오래가는 교직에서 굳이 가시밭길을 자처하는 교사는 없을 거다. 나는 뭐, 오래 교직에 있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다시 어스름이 밝고 출근할 시간이 오면서 나는 안도한다. 내가 가는 그곳은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