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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향 Apr 14. 2024

소백산 천문대

메시에 도전

천문지도사 연수 차 소백산 천문대에 왔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소백산을 등반한 적이 있었는데 장장 12시간 걸렸던 악몽이. 그런데 연화봉 근처에 있는 소백산 천문대는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따로 있다. 물론 사전에 허가받은 차량만 가능하여 최소한의 장비만 싣고 천문대로 향했다.

15분 만에 도착한 소백한 천문대 (허탈)

소백산 천문대는 대한민국 최초의 천문대로 최초의 관측 기록과 최초의 망원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래 최초 관측 기록지 첫 장의 ‘오늘부터 관측지 일지를 적는다.’는 정말 유명한 문구이다.

이게 왜 박물관이 아닌 여기 방치되어 있는 것인지..
61cm 최초 망원경과 오색빛깔 매킨토시

정말 구식(…) 장비인데 이걸 교체하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소백산 천문대는 관측으로서의 기능보다 최초의 천문대를 보존하는 기능에 좀 더 무게가 실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도에는 천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유명한 고 박승철 님의 사진도 걸려 있었다. 이 분은 전공도 천문 쪽이 아닌데 별이 너무 보고 싶어서 소백산 천문대에 무작정 찾아와 무보수로 일하게 해달라고 사정해서 이곳에 일하게 되었다는 전설의 일화가 남아 있다. 아마추어 천문인으로서 덕후의 한계는 끝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 전설적인 존재…


아래는 고인께서 필름 카메라로 찍은 혜성이다. 보정도 없는 그 시절 한 번 찍고 노출값이 틀리면 날려버리는 사진이 부지기수인데 정말 아름다운 사진을 많이 남기셨다.

고 박승철님, 헤일-밥 혜성
천체 안에 나 있다

연수가 끝나고 천문대에서 제공하는 맛있는 저녁을 먹고 슬슬 망원경을 펼치러 밖으로 나왔다. 태양이 지고 달이 뜨는 풍경은 정말 절경이었다. 주변 광해가 있는 편이지만 날이 춥지도 않고 (시야가 아주 좋은 건 아니었지만) 구름도 끼지 않는 맑은 날이었다.

소백산 천문대의 해질녘


해가 떨어지고 관측이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초승달이 밝고 남쪽으로는 광해가 심하고 시야가 좋지는 않았지만 북쪽으로는 볼 수 있는 별들이 많았다.

이번 강의가 메시에 찾기인 만큼 자동 아닌 수동으로 미션으로 주어진 메시에를 찾기 시작했다. 미션은 메시에와 NGC 포함하여 15개 정도의 천체를 찾는 것이었다. 오리온대성운이나 플레이아데스는 그냥 눈으로도 보이는 거라 제외하고 난이도가 좀 있고 볼만한 걸로 골라주셨다.



하지만 쉽고 예쁜 천체를 지나치기 어려운 법. 하루 종일 밝게 빛나며 관측을 방해했던 달도 그려 보고

쉽디 쉬운 플레이아데스는 쌍안경으로도 너무 잘 보여서 좋았다. 쌍안경은 정말 베스트 초이스!


솜브레보는 중간에 가로지르는 띠가 신기한데 이거 찾으면서 전자성도로 메시에 찾는 방법에 대한 감은 완전히 잡은 것 같다. 참고로 실제 찍은 모습은 오른쪽과 같은데 12인치 구경으로는 왼쪽 정도로 밖에 안 보인다. 물론 그것도 무척 신기하고 아름답다.


고양이눈 성운은 사진으로 보면 무척 예쁘고 신비로운데 실제 보면 뭔가 푸른 솜뭉치 살짝 찍다 말은 느낌적 느낌. 호핑 난이도도 상인데 식별도 어려워서 애를 먹었었다.


그렇게 자정까지 찾다가 2시간 자고 다시 은하수 관측하려 나왔는데 30분을 기다려도 안 보여서 다시 들어가 잤다. 근데 3시쯤에 은하수가 떴다는 제보가 아침에 들려왔다. (흑흑)

희미한 은하수. 이제 한국에서 은하수 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밥을 먹고 느긋하게 연화봉을 산책했다. 3급 연수 때는 연수생들이 선배님들께 밥을 해주는 전통이 있어서 전날부터 장 보고 밥 짓느라 여유가 없었는데 2급 연수는 이런 게 좋은 것 같다. 물론 공부는 더 힘들지만… (아침에도 강의를 들었다.)


내 망원경을 직접 쓰지는 못 했지만 이제 메시에 찾기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뿌듯한 연수였다. 다음번 연수 때는 장비도 업그레이드하고 관측 목록도 미리 만들어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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