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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향 May 19. 2024

수채화 재료 이야기

취미 미술

요즘 물감 짜고 팔레트 말리느라 휴일을 다 쓰는 것 같다. 날이 좋아 팔레트 만들고 그림 그리기 좋은 날, 수채화 재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전공자 분들이 보면 웃을만한 내용들이라 부끄럽지만, 입문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재료들이 수채화를 편하게 접하기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로 들으면 좋을 것 같다.


어렸을 때, 수채화는 항상 어려웠다. 나이 들어서 그림 좀 그려볼까, 하다가 우연히 수채화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 느낀 것이 ‘그동안 재료가 잘못했구나’였다. 학생 때 쓰던 수채화 도구들은 대부분 낮은 등급의 물감들이고 무엇보다 종이는 수채화 전용지가 아니라 전문가도 그리기 어렵다. 가끔 다이소 물감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분들이 있는데, 알고 보면 그 아래 종이는 몇 만 원짜리 아르쉬…


초보자일수록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취미를 오래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고수는 연장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실 고수는 이미 손에 익은 좋은 연장이 많고 무엇보다 그 말대로라면 ’고수가 아닐수록 연장을 가려야 한다’는 말이 된다. 수채화 재료도 비싼 것은 수십만 원이지만 찾아보면 저렴하고 좋은 연장이 많다. 이왕이면 좋은 재료로 오래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느끼면 좋겠다.



1. 수채화 전용지

수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종이이다. 아무리 좋은 수채화 물감이라도 문방구에서 파는 일반 도화지에 그리면 종이가 울고 난리가 날 것이다. 수채화는 종이를 가장 많이 가리는데, 절대로 250g 이상의 수채화 전용 용지로 그릴 것을 권한다.


수채화 용지는 셀룰로스 코팅지와 코튼지로 나뉜다. 셀룰로스 지는 저렴한 편이지만 여러 겹 색을 쌓을 때 적합하지 않으며 코튼지는 물을 오래 머금고 색도 여러 겹 쌓을 수 있지만 가격이 사악하다. 본인은 셀로로스지와 코튼 50%인 파브리아노(Fabriano) 수채 패드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파브리아노 엽서 패드


좌측에 있는 3개가 셀로로스 코팅지인데 맨 상단의 연두색 뚜비가 200g 점보(100매 4200원)로 연습장이나 가벼운 일러스트용으로 사용한다. 뚜비는 한두 번 붓터치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이나 캘리그래피용으로 추천한다. 중간의 파랑 250g짜리가 본인이 주로 사용하는 종이인데 가격도 합리적이고 뒷면에 엽서라서 만들어 두었다 편지로 활용하기도 한다.(나머지 용지들은 뒷면이 비어 있다) 가장 아래 보라돌이가 셀로로스 300g인데 250g보다 조금 두꺼울 뿐 딱히 파랑이랑 차이점이 없어서 비추천.


가운데는 모두 코튼 50% 용지로 상단부터 세목(Hot Press), 중목(Cold Press), 황목(Rough)이다. 뒤로 갈수록 종이가 거친 편이다. 제조사마다 거칠기에 차이가 있는 편인데 파브리아노는 중목도 상당히 거친 편이라 인조모를 사용하면 모가 잘 갈라진다. 하지만 역시 물을 많이 사용해도 울지 않고 색도 여러 겹 겹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참고로 가격은 파랑이의 2배인 4000원 정도. 양면으로 사용해도 종이가 잘 버텨서 펼쳐 놓고 2배 넓이로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본인은 주로 어반 스케치 용으로 사용한다.


가장 오른쪽이 미젤로 코튼 100% 학생용 수채화지인데 모아 모아 스타벅스 스케치북으로 만들었다.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은데, 셀룰로스지의 물 번짐이 코튼지에 비해 좀 얼룩덜룩하다. 하지만 그 얼룩덜룩함 조차도 수채화의 매력이라서 그리는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종이에 글씨를 쓴다면 코튼지보다는 셀룰로스지가 더 낫다. 일단 연필은 코튼지에서 엄청나게 번지며, 펜도 요철 때문에 쓰기가 쉽지 않다. 셀룰로스지도 만년필 쓸 때 좀 누르면 번지고 피그먼트 라이너의 경우 예쁘게 글씨 쓰기 어려워서(세로획이나 가로 획 굵기 조정이 어려움) 요새는 연필을 주로 쓴다.


셀룰로스, 코튼50%, 코튼100%


본인은 수채화 연습지로 파브리아노 파랑이를 가장 추천한다. 평소 2000원인데 세일할 때 1800원이라서 세일 뜨면 열심히 쟁이고 있다. 캔손이나 다른 저가 수채화 용지와 비교해도 가장 가성비가 좋으므로 추천한다. 물론 종이는 자신이 써보고 손에 잘 맞는 것으로 사는 게 좋기 때문에 화방넷 같은 곳에서 여러 수채화 용지들을 포스트 카드 크기로 사서 비교해 보는 것도 좋다.


나의 기록들

다 쓴 스케치북들은 깔별로 모아 둔다. 뭔가 기록용으로도 좋은 것 같고 한 번씩 펼쳐보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처음 이 용지를 접했을 때 그 물 번짐(지금 보면 참 얼룩덜룩하지만)에 반해서 수채화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수채화가 어려웠던 분들이라면 꼭 종이부터 전용지로 바꾸어 보기를 권한다.



2. 수채화 물감

물감이 요즘 자가증식하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러운데, 본인이 현재 가진 물감은 반 고흐, 신한 SWC, 미젤로 미션골드, 문교 노스탤지어 이렇게 4가지 종류이다. 팔레트가 하나 더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는 트래블용 신한 SWC를 짜놓은 거라서 총 4가지가 맞다.

귀염둥이 팔레트

가. 반 고흐 고체 물감 15색

처음 수채화를 시작하는 분이라면 과감히 반 고흐 물감을 추천한다. 일단 고체 형태라 짜서 말릴 필요도 없고 휴대용 붓도 들어 있고 팔레트도 유용하며 15색 발색도 최고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단돈 2만 9천원. 솔직히 물감은 전문가용부터 사용하는 걸 권장하는데 반 고흐는 예외이다. 이것 보다 상위 등급으로 램브란트가 나오는데 학생용 반고흐가 워낙 좋아서 램브란트 물감이 인기가 없다고 할 정도. 색도 하나하나 무척 예쁘고 유용해서 반고흐와 파브리아노 파랑이만 가지고 몇 년을 그렸던 것 같다.

반 고흐 고체물감

요즘은 이 15색에 다른 물감 6개 섞어서 소형 철제 팔레트에 넣어서 21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반 고흐는 색상이 정석적이지는 않은데 색감이 무척 예쁘고 선명하다. 문제는 색감이 다른 물감과는 좀 다른 것들이 있고 다른 물감들에 들어가는 색이 여기는 없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유튜브 강의나 책을 보며 공부할 때 불편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꽃 그림 강좌를 들을 때 Permanent Rose가 필요한데 반고흐에는 Quinacridone Rose만 있거나 Prussian Blue로 하늘을 그리는데 유투버 강사님의 물감 비해 보랏빛이 난다거나 할 때 매우 곤란했다. 게다가 녹색 계열 중 많이 사용하는 Hooker’s Green이 없는데 어떤 색인지 감이 잡히지 않고 조색도 못해서 대충 Sap Green으로 그리기를 반복. 결국 강의나 책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정석적이고 다양한 색상의 물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문가용 물감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나. 신한 SWC

일본에 홀베인 HWC가 있다면 한국에는 신한 SWC가 있다. 신한에서 나오는 물감 중 전문가용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그냥 준전문가(학생)용이고 전문가용은 SWC만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SWC가 전문가용 물감 중 턱걸이라고는 하는데 색상이 정석적이며 무엇보다 입시 미술에서 기본으로 사용하는 재료이기 때문에 저렴하게 구하기 쉽다. 본인은 당근에서 15ml 32색을 2만 원에 구입했는데 화방넷에서 현재 세일해서 8만 8천 원에 파는 걸 생각하면 정말 혜자로운 가격이다. 다른 물감들은 중고로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쉽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렇게 저렴하게 나오지 않는다.


신한 SWC

참고로 진짜 전문가들은 흰색과 검은색 물감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본인은 전문가가 아니라서 색 3개(화이트, 블랙, 살색) 더 추가해서 35색으로 팔레트를 구성했다. 이 물감과 함께 강의를 들으면 웬만한 색상은 모두 들어 있어서 수채화 공부하기 정말 좋은 것 같다. 이제 좀 제대로 수채화에 빠져 볼까 하는 분들에게 신한 SWC 추천한다.



다. 미젤로 미션 골드

미젤로도 국산 물감 중 하나인데 선명한 발색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신한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며 중고로 잘 나오지 않는다. 학생용으로 미젤로 미션 실버가 나오는데 이건 아버지께 선물로 사드린 적이 있다.(하지만 사용하지 않으시고 방치…) 실버는 골드보다는 발색이 차분한 편이라 이것도 다른 의미로 인기가 많다. 미젤로도 사용해보고 싶어서 아버지께 실버 달라고 하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벤트에 당첨되어 골드 7ml 24색 물감이 도착해 버렸다.(잉?)


미젤로 미션 골드

현재 물감을 굳히는 중이라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했는데 신기한 것은 팔레트에 물감을 풀지 않고 바로 종이에 물감을 풀어도 잘 풀린다. 다른 물감들은 팔레트에 미리 풀어주지 않으면 색상이 종이에 잘 먹지 않은데 안료가 좋은 편이라 그런 것 같다. 색상은 반고흐보다 개성이 강하지는 않은데 아직 제대로 써보지 않아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라. 문교 노스탤지어

이건 그냥 틴 케이스가 가지고 싶어서 샀는데, 물감이 딸려온 케이스.(잉?) 팔레트는 반고흐에게 주고 문교 노스탤지어는 반고흐 케이스로 자리를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문교도 국내 미술 용품 브랜드 중 유명한데, 가격 대비 성능이 매우 좋다. 예전에 오일 파스텔 72색을 써본 적이 있었는데 진짜 갓성비라고 밖에… 아무튼 문교에서 수채 물감은 고체 물감 형태로 밖에 나오지 않는데 12색, 24색, 48색이 나오며, 12색으로는 일반형, 틴트(노스탤지어) 형, 메탈형 3가지가 출시되어 있다. 본인은 틴트형을 샀는데 틴트는 간단히 말해 파스텔 톤이다. 가끔 몽글몽글한 그림이 그리고 싶어질 때 노스탤지어를 꺼낸다.(살구랑 터콰이즈 블루 쓰다 보면 마음이 몽글해진다.)


문교 노스텔지어

파스텔톤은 흰색을 섞어 조색하면 되는데 색이 탁해지기도 하고 일관된 색을 조색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틴트 물감을 사는데 대체로 가격이 사악하다. 문교에서 매우 저렴하게(1만 2천 원) 나와서 좋기는 한데 틴트가 아닌 계열의 색도 있어서 뭐지스럽다.(갈색이나 노란색 계열) 하지만 대체로 색도 예쁘고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발색도 준수하고 물에 잘 풀어져서 수채화 입문용으로 괜찮은 것 같다. 일반 12색 물감도 1만 원 안쪽으로 살 수 있으니 어반 스케치용으로 틴케이스 물감이 필요하면 추천한다.







잘 그리시는 분들을 보면 붓도 다양하게 쓰는데 본인은 반고흐에서 준 휴대용 붓이나 바바라 세필붓을 쓰고 있다. 물통도 집에 굴러다니는 유리병이고 연필도 집에 굴러다니는 HB를 사용하고 있다. 사기 시작하면 끝이 없지만 솔직히 수채화를 시작하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재료는 필요하지는 않다. 적당한 고체 물감과 적당한 수채화 용지 하나면 생각보다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요즘 배송도 빠르니 내일이라도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 날도 좋아 팔레트 말리고 어반 스케치 하기 좋은 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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