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퇴근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퇴근하겠습니다!
우아하게 자킷을 휘날리며 퇴근하는 모습. 드라마에서나 산다는 직장인의 모습이다. 내가 퇴근을 당당하게 말하고 퇴근할 수 있게 된 것이 언제였을까? 정시 퇴근하는 부장님과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게 된 작년부터가 아닐까 싶다. 4시 반이라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퇴근 시간을 가진 교직이지만 역시 정시 퇴근은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올해는 내가 부장이니 아름다운 칼퇴 문화 정착을 위해 일이 조금 남아도 무조건 정시 퇴근한다.(물론 너무 바쁜 시기에는 6시에 퇴근하기도 했다. 두 번 정도) 물론 사무실 내에서 나의 존재감은 공기 같아서 아무도 내가 퇴근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자유롭게 퇴근하는 분위기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이 바로 서류 상의 근무 시간과 실제 근무 시간이 다르다는 점이다. 실제 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출근과 퇴근 시간을 조정해야 하게 일과 시간표가 짜이게 된다. 나의 경우 대학원을 병행한다는 핑계로 정시 퇴근을 고집하는 대신 아침에는 40-50분 정도 일찍 와서 업무를 준비한다. 미리 와서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하거나 급한 것 한 건 정도는 마무리해놓는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일찍 움직이면 퇴근 시간 1시간은 세이브할 수 있다.
2-3년 전만 해도 나도 여타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상사의 눈치를 보며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부장' 직급을 단 분들은 무언가 실적을 내야 하는데 관리자에게 '일을 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야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40-50대 중년 부장 교사들의 야근 비율은 엄청났다. 야근을 하기 싫으면 외부 출장을 만들어 내어 일찍 퇴근한다. 교육청의 외부 출장이 대부분 오후 2시~4시 사이인데 그게 대부분 조기 퇴근을 위한 치트 키라는 건 이 바닥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물론 그 출장이라는 것은 연줄을 잘 잡은 교사들에 한한 것이고 대부분 학교에서 열심히 야근으로 시간을 때워야 한다.
집에 가면 할 게 많아?
칼퇴를 고집하는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대부분 야근하는 분들은 집에 가면 할 게 없다는 것이다. 혼자 있어도 할게 넘쳐나는 나에게 참 먼 나라 이야기이다. 혼자서 놀 줄 모르는 부장들 덕분에 나는 참 많은 야근을 했더랬다. 근데 그중에서 정말 개인에게 유익한 야근은 손에 꼽는다.
대부분의 부장들은 자신이 야근해야 하는데 같이 저녁을 먹을 사람이 없어서 부원들에게 야근을 강요한다. 마감 기한이 4일은 남았는데도 업무 시간 중이 아닌 야근 시간에 그 일을 하게 강요한다. 혹은 일을 빠르게 처리하면 일부러 작은 오타라도 꼬투리를 잡아 다시 하게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일을 더 준다. 그렇게 부원이 열심히 한 일은 다 본인의 '실적'이 되니 많이 할수록 좋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야근을 하기 위해 일을 하지만 일을 잘하기 위해 절대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번은 A라는 업무 루틴이 너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매뉴얼을 참고하여 좀 더 효율적인 루틴으로 만들어 제안한 적이 있다. 올해 당장은 힘들겠지만 내년에 다른 분이 이 일을 맡는다면 좀 더 편해지기를 바라며 제안했는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게다가 업무를 많이 잘하고 싶으면 엑셀이나 한글과 같은 업무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엑셀에 숫자 하나 입력하는 것도 무서워하는 분들이 다반사이다. 결국 업무 효율을 막고 있으니 일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정말 많은 삽질을 해야 하더라.
누구를 위한 야근인가.
책임감 때문에 야근을 할 수도 있고 업무를 잘하고 싶어서 야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를 위한 야근이 아닌 타인을 위한 야근은 하지 말자. 그게 내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일요일에도 나와서 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소중한 내 24시간을 직장에 바치지 말자. 내 시간은 직장보다 소중하니까. 모든 퇴근러들의 칼퇴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