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직장의 도비가 되기를 바라는 분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야근도 하고 주말에 나와서 일도 하는데 말이야.
그 사람들이 능력이 없어서 그러는 것 같아?
매일 2.5인분 씩 게눈 감추듯 일을 해치우다 못해 '일이 너무 많습니다'는 이야기를 상사에게 드렸을 때 내가 듣는 말이다. 모든 집단이 그렇지만 비능률의 끝판왕인 공무원, 그중에서 교사 집단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개미 소굴처럼 일이 몰리는 이상 현상을 경험한다. 가뜩이나 사람도 적은데 올해 일도 많아져서 고생인 요즘 참다못해 정중히 이야기드렸는데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분배하겠다'는 답도 아니고 어딘가에는 존재하지만 여기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설의 옆 학교 아는 부장을 소환한다. 슈퍼맨급 시야를 가진, 주말과 밤 가리지 않고 학교 행정 업무에 매달린다는 모 부장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 사람 능력이 없어서 그러는 것 같은데요?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천장의 석면의 개수를 열심히 세기 시작했다. 나도 부원 분들에게 일을 시켜보아서 그 마음은 안다. 잘하면 일을 더 주게 되고 그것을 더 잘하게 바라는 것이 모든 상사들의 욕심이다. 결국 돌고 돌아 '네가 더 밤새워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 이 레퍼토리는 결국 '직장'만 이득을 보는 슬픈 돌림 노래다.
나는 부원 분들이 너무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농땡이를 부리라는 것이 아니라 월급 받은 만큼 일을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성실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빠지는 함정은, 바로 직장 내에서의 성과가 곧 자신의 성취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향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덕업 일치의 경우는 흔치 않고 10년 뒤 AI로 대체될 것 같은 이 막노동스러운 업무는 절대 내 능력에 기여하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일은 적당히 하고 남는 시간은 수업 연구를 하거나 대학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100배는 낫다.
하지만 일의 총량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변하고 납기일은 일의 양에 관계없이 코 앞이기 때문에 독촉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근데 이건 피라미드 법칙에 따라 가장 위에 있는 분들의 책임이다. 결국 소화 가능한 이상의 일을 부원들에게 강요하는 상사는 백이면 백 자신이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이다. 제대로 된 상사라면 인력이나 업무를 조정하거나 그게 안 되면 본인이 밤을 새우겠지.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상사를 만난다면 전생에 10년 치 공덕을 쌓은 사람이 틀림없다. 사람이라는 것이 내 1시간이 남의 10시간 보다 더 소중하지 않은가. 결국 올해도 나는 악덕 상사를 만난 것이 틀림없다. 에잇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어라
이 말은 '평생직장'이란 말이 사라지는 현시점에서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자신이 직장인인지 직업인인지 판단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이 직장을 떠났을 때 현재의 연봉에서 몇 퍼센트를 받을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된다. 이 직장에서 뼈 빠지게 일해도 밖에 나가면 한 줄 이력도 되기 힘든 경우가 태반이다. 교직의 경우는 이것이 더 심해지는데, 대학교 강사를 하기에는 학문의 깊이가 얕고, 행정 업무는 교직 특수성을 가진 업무가 대부분이며, 학생 생활지도라는 미명 하에 '보모'의 역할을 수행 중이라 학교를 나오는 순간 할 줄 아는 게 없는 상백수가 되기 십상이다.
이제라도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갈아타고 싶다면 다음 10가지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자.
1. 나는 직장인인가? 직업인인가? 직업인으로서 나를 정의할 수 있는가?
2. 의도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가?
3. 일을 하면서 과정과 결과에 만족했던 10가지 장면이 있는가?
4. 남이 아닌 내가 진짜 욕망하는 삶과 일은 무엇인가?
5. 직장 생활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가?
6. 조직에 기대지 않고 팔 수 있는 개인기를 가지고 있는가?
7. 나는 직장에서 경쟁이 아닌 성장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가?
8. 직장 동료에게 나는 어떤 리더로 기억될 것인가?
9. 내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은 무엇이고, 이를 넘기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는가?
10. 나는 쉬이 떠나는 문제에서 주도적인가?
출처 :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김호 | 김영사 | 2020
체크해보면 결국 조직에 너무 기대고 헌신할수록 내가 '헌신'이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슬픈 현실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누구든 자발적인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노예가 되는 시간을 '근무 시간'만으로 한정하느냐 나의 소중한 '저녁'까지 양보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 남은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스킬을 익힌다면 놀면서도 업무를 잘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일단 업무 시간이 끝나면 퇴근하자. 퇴근길에 도비에서 탈출할 수 있는 10가지 마법을 만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모든 도비들의 선택적 자유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