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마지막 방학을 보내고 있다. 직장이 학교인지라 매년 방학을 경험할 수 있겠지만, 역시 학생 신분으로서 느끼는 방학은 체감이 다르다. 교사에게 방학은 ‘아 이제 방학이구나’이지만, 학생에게 방학은 ‘이얏호 방학이다!!!’이기 때문이다.(웃음) 3학기를 마치고 이제 남은 것은 4학기. 원래 5학기제이지만 학교는 일찍 끝낼수록 좋다는 지론 하에 일단 조기졸업을 신청해두었다. 그리고 다음 학기도 학점을 만족하면 이제 졸업이다.
직장인들이 다니는 대학원은, 일반대학원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무도 일정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수시로 홈페이지에 가서 일정을 체크하고 달력에 업데이트를 한다. 아직 등록금 납부일만 나와 있고 학기 시작일이나 수강 신청일은 나와 있지 않지만 대충 짐작은 할 수는 있다. 부디 직장 개학일과 수강 신청일이 겹치지 않아야 할 텐데….
대학원 수강 신청이 대학교 수강신청만큼 힘든 이유는 아마 인기과라서 그럴 것이다. 컴퓨터공학 전공이 요즘 계속 뜨고 있어서 참 많은 타전공생들의 수강 러시를 당하고 있다. 특히 머신러닝 쪽이나 데이터 분석 같은 과목은 정말 클릭 한번 미끄러지면 수강신청이 힘든 현실…. 요즘은 컴공 아니더라도 공대생이면 프로그래밍 언어 한 두 개는 기본으로 장착하고 온다. 점점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은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가는 느낌적 느낌일까? 아무튼 몇 개 개설된 것도 없는 전공과목을 클릭하기 위해 수강 신청일 당일은 정말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
나의 경우 수강신청 과목을 고를 때 원칙이 있다. 본인은 ‘컴퓨터 구조’나 ‘네트워크’ 같은 내가 안 갈 것 같은(그리고 싫어하는) 이론적인 과목들은 지양한다. 그리고 되도록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고 그게 아니라면 실무에 실제 사용되는 학문인지를 살펴본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과 전공과목에서도 몇 개가 탈락하는데, 그래서 다른 과 전공을 적극 탐색하기도 한다. 대체로 전기전자전공 쪽을 많이 타깃으로 하는데, 요즘 한창 핫한 딥러닝 분야가 사실 전기전자전공 베이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사실 코딩은 거들뿐….)
무엇보다 다른 과 전공을 듣게 되며 너무나 새로운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 새로움을 느낄 때마다 기분이 좋다. 뭔가 내가 바보가 되고 머리가 찢어지게 아프고 고민하면서 성장통을 겪는 것이 즐겁다고 할까? 다소 가학적으로 표현했지만 성장통이란 것이 30대가 되면 잊히기 시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일깨워주지 않으면 내 마음도 머리도 성장하지 않고 도태되는 느낌이 들더라.
사실 자기 전공 한 분야만 알면서 타인에게 겸손하라고 하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그런 이들일수록 겸손을 모르는 것이다. 진짜 겸손이라는 것은 자신의 무지함과 자신이 무지한 범위가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인데, 한국에서의 겸손은 그저 연장자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것들을 요구하는 연장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겸손하지 못하고 자격지심이 강한 편이라 상대하면 나만 손해를 보더라. 스스로 항상 공부하고 모르는 분야를 찾아 나서는 분들을 보면 나이 들어서도 겸손하고 관대하다. 나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새로운 분야를 찾아 공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찾아가며 공부하다 보면 ‘나를 언제쯤 완성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 평생 완성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차곡차곡 쌓아가는 그 느낌은 참 좋다. 부모님은 내가 직장을 가진 순간부터 이미 인생이 완성되었으며 이제 완성된 나를 복제하고 번식을 하라고 말한다.(쉽게 말해 결혼 출산) 부모 세대에게 있어 인생의 완성은 직장과 결혼으로 귀결되며 특히 여성의 경우 직장은 결혼과 출산의 보조도구로 보는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현대 사회는 인구 폭발에 의한 과밀로 부작용을 앓고 있다. 점점 혼자 사는 가구가 많아지는 것도 이러한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인과적인 현상인데 부모님의 생각은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인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계신 것 같다.
글쎄, 인생이란 것이 정답은 없기 때문에 꼭 부모의 뜻을 따른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더라. 하지만 적어도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부모의 강요에 의해 결정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로 보인다. 그 조롱과 압박이 부모님의 조급함의 거울이겠지. 하지만 적어도 자식이 건강하게 잘 살길 원한다면 믿고 지지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성숙한 부모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게 안 되는 것은 자식과 애착 분리가 안 된 부모가 아닐까?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그 아이를 대할까? 그것은 프로그래밍으로 날밤을 새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일 것 같다. 에러가 나면 즉각 콘솔에서 알려주는 컴퓨터와 달리 사람은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고 표현을 해도 그것이 에러인지 아닌지 알려면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 뭐 그러한 경험도 새로운 경험일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이 대학원이 끝나면 해야지. 그전까지 방학 동안 내가 찾을 수 있는 새로움을 느릿느릿 게으르게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