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추억3/ 우리 젊고 기쁜 날

오버레도르프 스트라쎄 10번지

by 이정화



드디어 내가 소꿉놀이같은 살림을 하게된 것은 슈바르츠발트 검은 숲이 둘러싸인 '방엔' 외곽, 나무장식을 덧댄 벽과 덧창이 있던
전형적인 독일목조주택의 3층이었다.
할라하부부와 크리스티나, 페드라, 마틴의
세 아이들이 살던 일,이층을 지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커다란 침대와 붙박이장, 의자와 테이블과 지지거리던 흑백TV가 있고,
부엌엔 식탁과 작은 전기레인지, 허리를 굽혀야 열수있는 작은 냉장고와 그릇이 있는
우리의 다락방이 있었다.

생활비가 적으니 욕심이 없었고
욕심이 없으니 걱정도 안해
우리의 삶은 단순하고 소박하고 그만큼 평온했다.

오래 비어있던 방을 쓸고딱아
서울에서 가져온 사진을 걸어 문패를 달고,
세모로 기울어진 천장에 은박금박의 별을 오려붙여 인테리어를 하고ᆢ
남편은 매일 동트기 전, 연구소까지
더 멀어진 거리를 벼룩시장에서 산 중고자전거로 출근했고,
달리 갈 데도 아는 사람도 없던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한적한 비탈길을 한참 내려가
바구니 짜는 집을 거쳐, 숲길을 지나고
작은 개울과 다리를 건너 다시 성곽 굴다리를 통해서 좀더 걸어야 있던ᆢ멀고 먼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집도 멀고, 냉장고도 적고, 무엇보다
이백마르크로 한달을 살고 남편은 공부도 했어야하니 장이라곤 야채 몇개, 계란 몇알과 고기 한팩, 쌀과 빵, 휴지 비누와 가끔 남편의 책과 공책 등을 사는게 전부였다.

점심값도 아낄겸, 내 심심함도 덜어줄 겸, 남편은 매일 왕복 40분의 거리를 달려 점심시간, 밥을 먹으러 왔고.. 집에서 머물수있는 이십분동안
나는 갈은고기 300그램 한팩을 사
여덟번몫으로 나누어 냉동해놨던 것을
하나씩 꺼내어, 이름뿐인 고기찌개나 볼로네제스파게티와 볶음밥같은 것을 만들어주었다.
한가지 반찬의 식사는 오분이면 끝나, 그시절 담배깞을 아끼기위해 담배잎을 말아피던 남편은
담배를 말며 어김없이 오분쯤
나와 놀아주기위해 '식후3판'이라 이름 붙였던 고스톱을 치고,
그리곤 십여분간 깜빡 졸다 다시 연구소로 달려가곤 했다.
유학생이 웬 화투를 독일까지 갖고갔냐싶지만
그 화투는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훨씬 전이던
그 시절, 승객들이 주로 해외노동자라 그랬던지 비행기에서 탑승기념품으로 주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짪은 점심시간을 힘들게 오가는 남편에게 점심을 준비 못해놓은 날도 생겼는데ᆢ
그런날은, 방심해 열어놓은 창과 문으로 왕벌이나 주인집 커다란 고양이가 우리방에 들어온 날이었다.
나는 벌레도 고양이도 너무 무서워 그때마다 집을 뛰쳐나가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그런 날이면 남편이 그것들을 쫓아내준 뒤에도
시간이없어 빵만 먹여보내야했다..
하루는 토스터도 석쇠도 없이 빵을 구우려다
주인이 키우던 토끼장에서
삐져나와있던 철망을 잘라, 남편이 석쇠와 손잡이를 만들어 주었다.
남편이 만든 석쇠는 빵을 구울때, 토끼똥냄새가 날것같은 기분말고도 대충 구부려만든 손잡이가 뜨거워지는 단점이 있어
나는 그것에 자투리털실을 감아썼다.

그렇게 아껴야하는 중에도, 은근히 우린
방엔같은 시골이아닌 대도시 서울에서 유학온 사람들의 프라이드가 있어
가끔은 연구소 손님을 초대하여 나름 한국요리로 한상을 차려냈다. 서울에선 라면도 내 손으로 안끓여먹었으니 분명 어설픈 솜씨였겠지만 누가
알랴 하며...
어느날은 주인가족을 불러 김밥과 동그랑땡을 대접했는데... 부끄럼많던 주인집딸이 처음보는 검고 동그란 것에 먹기 두려웠던지, 내가 김밥을 집어주자 당황해 방귀를 끼곤 "오블라!" 하고 소리를 질렀고,
온 가족이 자지러지게 웃었는데...
나는 그것보다 독일인은 '아!"도 아니고 "오!"도 아니고 '오블라!'로 놀랄수있다는 것이 더 웃겼다.

또 언젠가는 연구소에 견학온 일본인을
같은 동양인이라고 연구소대표로 불러
불고기를 대접했는데, 그 일본인이 라면 두개를 선물로 주고가.. 쪼잔한 일본인이라고 흉을 보면서도 오랜만에 먹는 라면을 두번 맛보기위해
라면 하나에 파스타국수를 썩어끓여
남편과 나누어먹기도 했다.

독일에 사는 동안, 남편은 학생보험이 되었지만
나는 의료보험이 없어 아파도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소위 부잣집 막내딸로만 살아
늘 잔병과 엄살을 달고 살던 나는 독일에서
그야말로 누울자리가 있어야 발을 뻗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고 완전 새사람이 된 듯 씩씩해지고 건강해졌다.
그리고 열 손가락도 안채워지는
우리의 시장목록을 보며
살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진않다는 생각에
덜 쓰고 덜 욕심내며
우리는 무인도에서도 잘 살아낼거라고 흡족해했다.
우리는 젊고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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