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추억5/ 부활절휴가
로마의 휴일/피노키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배경이 로마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런던이나 파리, 베를린이었다면
이별의 엔딩임에도 그토록 영화가 따뜻하고 유쾌했을까.
내가 로마를 좋아하는 것도 뭔가 복잡했지만 유쾌했던 신혼때 로마의 기억때문이다.
아버지는 방엔을 떠나시며 내게 돈을 주셨다.
우리의 형편을 보고 비상금으로 주셨을테지만
나는 결혼생활을 시작하며 남의 도움은, 특히 친정도움은 절대 안받고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터라,
아버지가 나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알아
차마 거절못해 받은 그 돈을
생활이 아닌 '여행'에 다 써버리기로 했다.
마침 장학금도 이백마르크가 올라, 우리에겐
고기 반근을 여덟번이 아닌 네번으로 나누어먹어도 될만큼의 여유가 생겼고. 철도 없고 걱정도 없고
최소한의 것외에는 여전히 탐내지도 않았던 때였다.
밤열차를 타고 로마에 간때는 부활절휴가였다. 남들처럼 포룸과 콜로세움과 트레비분수와 성당, 광장들을 구경하고, 아마도 남들과 달랐을거라곤
로마의 전역을 돌아보는 동안 한번도
버스를 타지않고 걸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작은 베낭하나씩을 메고 뚜벅뚜벅 씩씩하게 걸어다녔다.
그러다 한번은 간첩으로 오해받고,
한번은 어쩜 간첩일지 모르는 사람을 만났다.
관광루트가 같았던지, 어느 유적지의 줄에서 만난 한국인가족을 다른곳에서 두번째로 만났을땐
우리는 나란히 앉아 담소까지 나누었다. 여행자유화 전이니 로마에서 우리같은 젊은부부를 보는것도 신기해보였겠지만, 어린아이들까지 온가족이 여행을 하는것도 특별했는데 어딘가 주재원가족이라고 했고ᆢ우연하게도 초등학생아이는 내가 나온 사립국민학교를 다니다 왔다해, 우린 서로 더 반가워했다.
세번째로 우연히 마주쳤을땐 '로마가 참 좁다'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던 가족이
다음날 다시 우리랑 마주쳤을땐, 우리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을 갔다. 유럽에서 유학생이나 주재원이 종종 납북되던 때였으니 그 사람들은 우리를, 자신들의 뒤를 쫓는 간첩으로 생각했던지ᆢ
그 뒤엔
내가 호텔에서 짐을 꾸리는 동안,
로마의 테르미니역에 나폴리행 기차표를 사러간 남편이 표를 끊는 대신 젊은 한국인여자를 데리고왔다.
여자는 놀랄만큼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왔고
혼자 여행중이라며 어딘가 산맥을 넘어왔다는데
돈을 잃어버렸다고, 남편에게 당분간 우리와 함께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했다.
일정도 꼬이고 황당했지만
같은 한국인이란 인정상, 모른척할수도 없어
우리는 나폴리여행을 포기하고 여자를 일단
방엔의 우리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는데ᆢ
갑자기 말이 바뀐 여자는 그냥 돈을 빌려주면, 자기 아는사람이 우리에게 돈을 부쳐주게하겠다고 ᆢ돈을 먹지에 싸서 항공우편에 넣으면 얼마든지 부칠수있다는 믿기어려운 말만 하더니
우리가 독일행 기차표를 끊는동안 보이지않았다.
순진하게도 혹시나싶어 여자를 찾고 기다리느라
다시 일정이 틀어진 우리는 그밤,
독일로 돌아가지못해
어딘가 로마의 굴다리밖쪽에 있던 극장에서
거짓말 한번에도 코가 쑥쑥 길어지던 '피노키오' 만화영화를 보았다.
다음날 독일로 돌아가는 기차역에서
사라졌던 여자가 또 서성이는 것을 보았지만,
여자는 우리를 보고도
아는 척 하지도, 피하지도 않아ᆢ
우리는 그후 종종 그 여자의 가방에 무엇이 들었었을지 ᆢ 어쩜 우리가 둘이 아니고 혼자였다면 누구하나 그 가방속에 들어가지않았을까, 생각하곤 했다.
진실은 알 바없이 어쨌든
젊은 우리의 '로마의 휴일' 은
로마답게 신비속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