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추억6/ 안녕 Wangen!!
AltePost/Sorry 할라하
우리가 방엔을 다시 찾은 것은 독일을 떠나온지 15년만이었다. 중학생 초등학생 아들딸도 함께였다.
오스트리아국경을 넘어 독일로 들어서자마자
조급한 설레임으로 할라하씨 집앞에 섰을때는
우리가 그옛날 방엔에 처음 왔을 때처럼 어둑했다.
계획은 방엔시내에 방을 정하고 다음날 들려보려던 것이었지만, 창문너머의 불빛과 라디오소리에
젖혀진 커튼사이로 들여다보니 할라하씨모습이 보였다.
참을수없는 마음으로 문을 두들기고ᆢ
문을 열자마자 우리를 알아보는 할라하씨와 포옹을 하고ᆢ할라하씨는 우리아이들을 손주보듯 반가워하며 엄마아빠의 신혼방에서 하루 자고가라고 붙잡았다.
강산이 바뀌는 그 오랜 세월뒤에도 오버레도르프 스트라쎄 10번지의 집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할라하씨에겐 어쩌면
땅을 흔들고 산을 깎아내리는 바람이 불었던지
아이들이 독립하고 아내와 헤어진 할라하씨는 동그마니 혼자였다. 15년전엔 겨울에 도착했었지만 이번엔 여름이었는데, 일찍 어둡게 느껴진것도
외진 시골마을, 빈집의 긴 어두움이었을지도ᆢ
오래 비워두었던 다락 방에 침대시트와 이불들을 가져다주며 우리보다 더 들뜨고 즐거워하던
할라하씨와 다음날 서둘러 헤어진 것은 차마
반백의 외로운 할라하씨를 더 보기 어려워서였다.
그후로도 여러번 독일에 갔지만
늘 그리워했음에도 너무 작은 시골마을이라 들릴 일이 없던 방엔을 재작년엔 다시 들렸다. 처음으로부턴 34년만이었다.
일정상 우리의 신혼방은 가보지못했지만
산책길에 잠시 뒤쳐졌던 남편은 길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말을 거는 한 할머니를 만났고ᆢ
젊은시절 연구소 식당에서 일을 했다는 할머니와 함께 첫 동양인이었던 남편을 위해 쌀밥을 지어줬던 것을 함께 추억했다고 한다.
방엔엔 오래된 우체국이 있다.
세월이 흘러도 제 자리에서 그모습 그대로 서있는ᆢ
Alte Post는 방엔사람들에겐 일종의 랜드마크이고 약속장소였다. 특별한 건물이 별로 없는
작은 마을에서 우체국만큼 신나고 설레고 아름다운 곳은 또 없어 우리도 늘 그곳에서 만나 서울로 편지를 부치거나 전화를 걸거나하였다.
잊은 듯, 무심히 지나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ᆢ
그 언제 다시 소식이 올지 기다리며 묵묵히 서있는
알테포스트처럼ᆢ
문득 다시 생각나는 시ᆢ
'저렇게 많은 별들중에 별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중에 그 별하나를 쳐다본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또다시 어둑해지는 시간이면
알테포스트에 편지처럼 날아가고 싶다.
반가운 편지처럼 날아가고싶다.
***덧붙여ᆢ
그옛날 방엔시절에 가장 큰 즐거움은 남편과 자전거를 타는 것이었다. 그러나 매일 출근하는 남편에겐 중고자전거가 있었지만, 나는 자전거가 없었다.
할라하씨집의, 이미 내 키를 넘어선 아이들에겐 각각 자전거가 있었고ᆢ마음씨좋은 할라하씨는 나에게 언제든 그중 남아있는걸 타면된다고 하셨다.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고 들판을 지나 고개를 오르내리던 어느날, 서울에서 수원정도의 거리를 자전거로 나갔다가ᆢ속도를 내고 쫓아오는 차에 놀라 자전거에서 떨어지는바람에 내가 탔던 자전거가 벼랑아래로 쳐박힌 사고가 났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고장난 자전거를 끌고와선, 활처럼 꺽인 바퀴를 둥글게 피겠다고 대장장이라도 된양 밤새 두들겨대는 우리옆에서ᆢ그 먼 거리를 자전거로,
심지어 빌린 자전거로 다녀온것도, 틀어진 바퀴를 두들겨 둥그렇게 만들겠다는것도
모두 무모한 짓임을 알면서도 공구를 빌려주던 할라하씨가 드디어 선언을 했다. 그렇겐 못고치니 새 바퀴로 갈자고ᆢ
그러나 우리는 싸구려 갈은고기도 한번에 사십그램밖에 못먹는 가난한 유학생이었고ᆢ할라하씨는 어차피 자기딸이 타던 자전거니 바퀴값을 절반 내기로 하였다.
그때는 남편의 중고자전거값보다 더 바싼 새바퀴값을 물게된 것에 당황해 그 제안이 다행스럽기만했는데
그후엔 그순간이 오래도록 후회와 미안함으로 남았다. 우리생애 가장 야박하고 염치없던 순간으로ᆢ
정말 편치처럼 다시 날아갈 순간이 온다면 할라하씨에게 그때를 먼저 사과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