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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Jun 13. 2020

걱정전문가 /프로걱정러

오늘의 new


나는 '걱정 전문가'다.
걱정스러운 사람을 걱정하는 일이
나의 역할이고 나의 본질이다.
나는 본질에 충실하게
비오는 날엔 짚신장수를
맑은 날엔 우산장수를 걱정한다.
두 아이들을 걱정하고 두 어머니를 걱정하고
둘이 아니라 다행인 남편을 걱정하다가
아무래도 하나만 걱정하긴 아쉬워
세상의 다른 가장남편을 걱정한다.
코로나의료진을 걱정하고 학대받은 아이를 걱정하며
이따끔 나쁜사람까지 걱정한다.

프로걱정러로서
나는 남의 일만 걱정하고
나에 대한 걱정은 하지않는다.
프로축구선수가 내 동네조기축구를 뛰지않는 것과 같다할까.
어차피 공부도 안 하고 일도 안 하는
전업주부인 내 사회적기능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과 며느리 등, 접속사나 부속어같은 존재라
직접 일을 벌이거나 사고를 치지도 않으니
내 스스로의 걱정거리가 별로 없기도 하다.
(이 점은 참ᆢ개인적으론 쓸쓸하지만,
전문걱정가의 자질과 원칙을 생각할땐 한편 떳떳하다.)

내가 걱정을 해준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거나
해결되진 않으니,
남들보기엔 걱정만 하는 내가 한심해 보일테고 나로선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걱정이란
각자의 꿈이나 부채처럼
저마다의 독립자산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ᆢ그걸 알면서도ᆢ
세월과 함께 이미 전문가가 된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주변걱정을 한다.

옷을 만드는 아이들의 새소식을
중독적으로 SNS에 퍼 나르고,
실밥뜯기, 다림질, 포장, 청소등의 잡일을 해주고ᆢ
한달에 몇번 주기적으로 까꿍하고

치매십년차 엄마를 찾아뵈어

적어도 우리에 대한 기억만은 단단히 붙들어매는 기억지킴이를 하고ᆢ
매주 치매2년차 시어머님 반찬을 챙기고,
거의 매일저녁 알람처럼 전화해
약 복용시간을 일깨워드리고ᆢ
사업실패에 보증까지 잘못 선 남편에겐
마음에 둔 잔소리와
썩 영혼은 없어보일지도 모르지만,
힘내라거나 괜찮다는 단 말을
번갈아 바친다.

세상의 더 아픈 사람들을 보면
짝짝짝, 아낌없이 응원의 박수를 치고
그런 사람들에게조차 무지막지한 막말을 해대거나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겐
혀뿌리가 얼얼하도록 쯧쯧쯧 거칠게 혀도 찬다.

나는 내 일에 열심이다.
내 일이 남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해야 할 걱정인데
내 스스로 자격을 주고 내 가치를 인정하겠다고  생각하니, 해야할 격무인 걱정 외에
내 무력감이나 한심함을 돌아보지않아도 되게 되었기때문이다.

***

살아가는 한, 늘
눈앞엔 갖가지 걱정스러운 일이 있고
새 사랑으로 지난 사랑을 덮듯
이 걱정으로 저 걱정을 덮거나
더 큰 걸로 좀 작은 걱정을 덮는 내가
요즘 새롭게 심혈을 기울이고있던 것은
오빠걱정이었다.

무남독녀 예쁜조카의 돌연사 뒤에
공황장애에 시달리던 올케언니마저  아프리카선교를 떠나고ᆢ
오래 끊었던 담배를 다시 하루 세갑 반씩 피우며
본업인 글쓰기도 사업도 작파하고
혼자 귀농한 막내오빠ᆢ

단 하루도 쉬지않고 틈틈이 오빠생각을 하다가
유기견과 살고있는 조카예명을 따 오빠의
귀농블로그를 만들었다.

그 옛날, 갓 스무살에

최연소 신춘문예등단 작가가 된
오빠의 첫 글 제목은 '앵무새 리코와 알파'였다.
리코란 앵무새를 그리는 화가의 이야기ᆢ

나는 그 글과 달리

내가 오빠의 앵무새 리코가 되어
혼자 울타리를 치고 혼자 나무를 심으며

말없는 오빠의 귀농을 매일매일 흉내내

지어 올린다.
평생 서울에서만 나고 자라 시골이라곤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도 오빠의 과수원과는 멀리 떨어진 이곳 서울에서,
내가 오빠랑 그곳에 같이 있다는 신호나 편지를 보내듯이ᆢ
그러니 그 블로그는 전적으로 오빠걱정가인 나의
오빠를 향한 무언의 잔소리며 응원이며 기도다.


어느 세월에ᆢ그 블로그를 통해

과일이 팔릴거라는 기대는 하지않는다.

그냥 드믄드문 그 블로그에 누군가 들어와

두런두런 오빠에게 힘을 주고

그러다보면

툭하면 우울속에 잠적하는 오빠가

직접 세상과 소통하지않을까, 바랄 뿐이다.
그렇게 이제 지난 상심이나 걱정은 내게 좀 맡기길 바랄 뿐이다.


***


그리고 ᆢ

내게 맡기길 바랄뿐이라고 ᆢ

생각은 하지만

사실 버겁다.


오늘은 92살 먹은 시어머님이 유방암 확진을 받으셨다. 92세에도 어머님은 여성이셨던 거다.

이제 모든 걸 능가하는 더 크고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아무리 내가 걱정전문가래도,

스스로 그렇게 이름을 붙여 

그걸 내 할일로 받아들이고  살려했어도

이건 진짜 큰 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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