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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Jul 13. 2020

어디 두고 보자

아크릴 물감 손그림

13일의 비오는 날이다.
13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이 와중에도 빗소리는 듣기 좋은데
새벽 꿈에선 봉투 세개에 사인을 하고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아이들을 여럿 만나고
또 엑스트라나 카메오처럼 흘낏 나타났다사라진 아버지를 보고ᆢ

비가 들이치나 어쩌나
밤새 몇번이나 잠을 깨  
이 창 저 창을 기웃거리다 다시 자선지
6시40분 남편이 출근준비를 하러 일어났을 땐
몇마디 참견도 해놓곤
정작 십분 뒤 그사람이 나갈땐
잠에 빠져있다가 개짖는 소리에 놀라
이미 현관문을 열고나간 남편뒤를 쫓느라
꽈당 넘어져 무릎을 깨고ᆢ

그래도 남편과 인사를 나누고
그의 뒷꼭지에서 기도도 한편 올렸다는 안도감과
까진 무릎과 팔꿈치를 보며
분명 썩 좋지않아보이던 꿈에
이로써 나름 때워버렸다는 가뿐한 알량함으로
우리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벽에 걸려있던
내가 많이 아끼던 전혁림의 '바다와 나비'
두 점을 과감히 딴데로 옮기고

최근 무엄하게시리 캔버스까지 사갖고
세시간만에 휘리릭 그린 십호짜리 꽃그림 두 점을 걸쳐놓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데
자리가 그림은 만드나. 아니나,
어디 두고보자는 심정으로 ᆢ

몇 백 호 캔버스를 사서 채워대야
이 시간이 다 지나가있으려나.
슬그머니 다시 그림을 떼어내며 드는 생각이
아 ᆢ 캔버스그림은 버리기도 힘들겠다고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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