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과그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화 Jul 28. 2020

고흐의 푸른방

1998년산빈티지크레파스 그림


어릴때 엄마가
하얀 땡땡이무늬가 있는 분홍색 비옷을 사다주셨다. 난 그게 정말 맘에 들어
비가 오거나말거나 당장 입고나가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엄마에게 화를 내셨다.
겨우 아홉살인데 눈이 나빠지기 시작한 막내딸에게
늘 혀를 차시던 아버지는 푸른색을 봐야 눈이 좋아지니 푸른빛 옷으로 바꿔오란 호령이셨다.

결국 엄만 하늘색 비옷으로 바꿔왔는데
이미 첫것에 맘이 가있던 내가 그걸 좋아했는지,
자주 입었던지는 기억에 없다.
갖지못했던 것에 대한 기억뿐ᆢ
이맘때처럼 비가 잦던 때였으려나ᆢ

고흐는
노란집이라 부르던 아를에서 행복과 평안을 꿈꾸며 자신의 방을 세 장 그렸다고한다.
고갱을 기다리며 한 장,
고갱과 함께 기거하며 한 장,
정신병원에서 어머니와 누이에게 보내기위해 또 한 장ᆢ 한번도 세 작품을 비교해본 적이 없는데
지금에사 같은방 세 장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고흐의 마음이나 상태, 그날의 빛과 시간 등의 차이였을까.

흉내도 어설픈 나로선
똑같이 그리래도 그릴수도 없지만
나는 고흐의방에 아버지가 강추하던 푸른빛을 넣었다. 눈도 밝아지고 정신도 좀 맑아지라고ᆢ 그래봤더니만 저건 딱
불면에 백내장이 온
고흐를 흠모하는 따라쟁이 동네아줌의 방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1998년 신서초등학교 2학년2반에 다니던 딸이 쳐박아둔 크레파스로 그렸으니
그리긴 오늘 그렸어도 재질은 나름 빈티지 ㅎㅎ
다음엔
하늘색도 분홍색도 색이 빠져 회색이 되어버린 빈티지국민학생용크레파스말고
오일파스텔에 도전해봐야지~~

내 지인 중엔 유난히도 미술하는 사람이 많은데
감히 그림의 '그' 자도 모르는 내가
유치한 그림을 잔뜩 올리는걸 보면
번데기앞에서 주름을 잡는 사람도 있는 법~~
젊을때 유치한 짓을 하면 흉이 되지만
나이들어 유치하면 그거이 젊게사는 것
같지 않을까~~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잠든 눈썹 벽지가 있는 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