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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e Nov 17. 2024

영화 김씨표류기 리뷰: 서울에 고립된 모든 김씨에게

나의 한국 영화 인생작

나는 김씨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성을 가졌다. 본관마저 그 수가 가장 많다는 김해 김씨다. 한 학년에 동명이인이 두세 명씩은 꼭 있을 만큼 이름마저 흔한 편이라서 그런지 내 인생마저 흔한 모습이다. 나는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풀어나가야 할 퀘스트를 착착 수행했다. 인서울 상위권 대학에 입학해 연애, 취업을 운 좋게 해냈다. 번아웃과 고독이라는 퀘스트 보상도 알차게 챙겼다. 열심히 달렸다. 요즘 들어 옆을 보니 아무도 없다. 그니까 친구가 없단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아니, 그것도 맞긴 하다. 친구가 거의 없다. 아무튼, 정말 혼자였다. 서울에 고립된 느낌이다. 대전에서 나고 자라 스물, 만으로는 열여덟에 상경했다. 그땐 나의 모든 것이 서울에 있었다. 모든 것이라고 함은, 현재와 미래를 말한다. 돈도 없고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었지만, 나는 지금 여기 서울에 있으며, 앞으로도 이곳 서울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확신에 빛이 바랬다. 그동안 곁의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이 도시에 나 혼자 남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것은 즉 이제 내가 이 도시에서 무슨 짓을 해도 내 책임이고, 간섭해 주는 고마운 사람도 없고, 고마운 조언마저 야속한 거리를 두고 화살처럼 날아올 것이라는 짐작이다. 분명 이 메인 퀘스트는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누구나 완료해야 하는 필수 퀘스트인 줄 알았는데, 다들 어디로 갔냐고.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다 사라지거나 멀어지는 것 같은데, 이놈의 지하철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냐고.


그러다 만난 영화가 <김씨표류기>다. 여기 흔한 김씨가 또 한 명 있다. 서울이라는 뻔한 도시에서 빚더미라는 뻔한 장애물, 자살이라는 뻔한 결론, 한강이라는 뻔한 장소. 이 요소들의 결합이 클리셰가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차디찬 물 밑으로 가라앉았는지 고민할 겨를이 없다. 풍덩, 남자 김씨는 서울의 빛이 비치는 강물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선 도착한다. 저승 말고, 밤섬에. 김씨의 절박한 구조신호는 여전히 도시에선 무음모드다. 찰나의 떨림이나 진동도 주지 못 한다. 김씨는 밤섬에서 또 한 번 죽기로 결심한다. 셀 수 없이 수백 번 했을 그 다짐 뒤엔 또 수백 번의 살아보자는 절박한 다짐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김씨는 살기로 다짐한다. 날 괴롭혔던 도시가 저 멀리 보이지만 절대 닿지 않는 곳, 무인도 밤섬에서.


모래사장에 크게 써두었던 HELP는 HELLO가 되었다. 김씨의 새 인생이 시작되었다. 쉽게 주어지는 익숙한 성공과 실패는 없었다. 자기 손으로 본인의 세상을 일구어가며 처절한 성취를 이뤄낸다. 김씨는 김씨의 유일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진정한 자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고립과 고독, 고난... 쓰리고가 필요한 것인가, 하는 순간 한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 김씨다.


여자 김씨는 인터넷에서 비싼 명품과 예쁜 여자 사진을 도용해 가짜 삶을 살고 있다. 여자 김씨는 밤섬에 가지 않고도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둬 고립시켰다. 히키코모리다. 그녀가 컴퓨터 앞을 벗어나 유일하게 창밖 세상을 보는 시간은 민방위 훈련으로 모든 활동이 멈추는 순간이다. 여자 김씨는 카메라로 정지한 대도시의 이곳저곳을 찍는다. 그러던 와중 조용한 렌즈에 밤섬에 표류한 남자 김씨가 포착되었다. 두 김씨는 스스로 고립을 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절박하게 서로 닿기를 원한다. 여자 김씨는 밤마다 몰래 쪽지를 넣은 유리병을 밤섬에 던지고, 남자 김씨는 그 유리병을 찾으러 섬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둘은 서로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이 도시의 유일한 존재다.


<김씨표류기>는 제목대로 표류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잘 그려낸 영화다. 사회의 조류에 맞춰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어느 순간 고립되고, 남들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는 목표 하나를 위해 진창 노력해 보고, 그것을 희망과 위로 삼아 연명하고, 또 다른 고립된 사람을 만나 그래 다시 한번 해보자, 또 속아보는 굴레.


이렇게 고독하게 붐비는 도시를 살다 보면, 때론 애써 일궈놓은 나라는 존재가 남들에겐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는 비바람에 꺾여버리기도 한다. 비바람을 어떻게 바꿔볼 순 없으니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혼자를 택하다가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소망한다. 또 실망하고, 또 상처받을 것을 안다. 그래도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은 표류하는 김씨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놓는 순간, 서울 사는 김씨들의 여정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너도 나를 이해하지, 너도 나와 같지, 묻고 싶은 욕망이 곧 희망이다. 이렇게 못난 나를 좀 봐주고 인정해 달라고. 진정한 나의 삶에도 누군가의 장력이 느껴지는 팽팽한 실로 연결된 종이컵 수화기가 언젠가 나타날 거라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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