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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e Nov 11. 2024

삼시세끼? 삼시독서!

책 마다 읽기 좋은 시간은 따로 있다

책을 읽기 가장 좋은 시간은 언제일까? 아침과 저녁, 자기 전으로 나눠 독서를 하고 있는 나는 책에 종류에 따라 그 시간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점심으로 크림 파스타를 먹은 날, 저녁엔 얼큰한 소고기국밥이 당긴다. 아침엔 빵 한 조각으로 식사를 때울 수 있지만 저녁엔 절대 그런 식사를 용납할 수 없다. 기름진 마라탕을 저녁으로는 환영하지만 아침 메뉴로는 반기지 않는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금정연 작가의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을 읽으면서 이 생각이 좀 더 구체화될 수 있었다. 금정연 작가의 일기로 채워진 이 책을 자기 전 리클라이너 소파에 눕듯이 앉아 읽으면, 쓰지도 않은 일기를 쓴 것 같고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타인의 일기를 보며 나의 하루를 되돌아보고 정리하기도 했다. 이 책을 아침에 읽었으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이었다. 어떤 책은 특정한 시간에 빛을 낸다. 마치 RPG게임에서 선사하는 경험치 2배 시간, 이런 것처럼...


나의 하루 독서 루틴은 이렇다. 첫 독서는 아침 출근길에 시작된다. 나는 한 시간 동안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서 회사로 이동한다. 중간에 구로디지털단지역을 지난다. 거기서 슬픈 직장인들이 우르르 내리고 나면 앉을자리가 생긴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린다. 회사에 도착하기까지 나의 독서대가 되어줄 것이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파우치와 접이식 우산, 충전기를 대강 겉에서 재배치해 경사를 조절한다. 그리곤 책을 꺼내 올려놓고 읽기 시작한다. 읽는 책은 주로 문체가 짧고 간결한 소설이나 에세이다. 아침부터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책을 읽으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침에 뇌가 빨리 깨는 사람들은 호흡이 긴 책을 읽어도 좋다. 소설이 재밌으면 한 시간이 십 분처럼 느껴질 만큼 출근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핸드폰으로는 소설에 맞는 분위기의 클래식 음악을 재생해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정말 재밌는 책을 읽을 땐 옆 사람이 바뀌는 것도 모른다. 내릴 정류장을 놓치기도 한다. 요즘 지각한 날은 보통 위화의 소설을 읽던 날이었다.


이렇게 출근하면 퇴근 전까진 책을 읽을 시간이 마땅치 않다. 정말 흔치 않게 점심시간에 일찍 들어오는 경우 아침에 읽던 책을 이어 읽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추천하지 않는다. 일분 일분이 소중한 점심시간이 허무하게 흘러가버린다. 그래서 내 두 번째 독서는 퇴근길에 시작한다. 지친 직장인들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싣는다. 퇴근길에도 보통 앉아 가는 편이다. 하지만 눈과 뇌가 많이 지쳐있기 때문에 책 속의 정보를 받아들이기 버거운 날이 많다. 역시 출근길에 읽었던 가벼운 책을 이어 읽기를 추천한다. 눈을 감고 쉬고 싶다면 오디오북도 추천한다. 하지만 나는 귀로 무엇인가를 집중해서 잘 듣지 못한다. 출퇴근시간을 합한 두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백 페이지 정도는 너끈히 읽을 수 있다.


집에 도착하면 저녁을 먹는다. 대충 차려 먹거나, 집 앞 손만두집에서 사 온 만두를 라면이랑 먹기도 한다. 아, 침 고인다. 화장실에 들어가 하루동안 뒤집어쓴 먼지를 씻어내고 뽀송한 마음으로 리클라이너 소파에 앉는다. 내가 아무리 책에 미쳐있다지만 비는 시간을 모두 독서에 올인하지는 않는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도 읽고 쓰는 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유튜브를 본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쉰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읽으려고 쌓아둔 책이 눈에 띈다. 그때 저녁 독서를 시작한다.


저녁 독서는 아침에 읽기 버거운 두꺼운 책을 읽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아침 출근길보다 저녁에 어울리는 책이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어렵고 문장 하나하나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던 책이다. 이런 책을 읽는 거다. 아침에 읽지 못 한 인문, 사회 분야 책을 읽기도 한다. 한편 독서는 음악과 함께 해야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보통 책 분위기에 맞는 클래식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책을 읽는다. 영화음악도 괜찮다. 요즘은 책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가 각각 만들어져 있기도 하니 책을 읽을 때 한 번 찾아봐도 좋다.


책을 읽다가 밤 열 시가 되면 또 유튜브를 보거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한다. 없이 잘 살아왔지만 사고 싶은 것들을 장바구니에 넣기도 한다. 컬리, 29cm, 쿠팡, 당근을 돌다가 이게 다 얼마인가 싶어 황급히 어플을 종료한다. 이제 다음은 뭐 하지? 답은 정해져 있다. 영화를 보거나 자기 전 독서를 시작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이번 글은 독서에 대한 글이니까 독서를 선택했다고 치자. 이때 읽는 책은 결이 잘 맞는 작가의 에세이를 추천한다. 결이 잘 맞는 작가란, 별 힘들이지 않아도 문장이 스르륵 읽히는 작가다. 문체뿐만 아니라 내용도 독자의 마음을 크게 거스르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자기 전 읽기 좋았던 책은 앞서 언급했던 금정연의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이었다. 나와 별 다르지 않은 하루를 둥실둥실 보낸 것 같은 이의 일기를 읽으면 마음이 편했다. 자기 전에 내가 써야 할 일기는 미뤄놓고 남의 일기를 보며 키득거리며 혼자 웃는 시간이 좋았다. 별 거 아닌데 마지막엔 꼭 날 웃게 하는 그런 짧은 글을 읽다 보면 하루에 어떤 나쁜 일이 있었든 그 순간은 다 잊을 수 있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느끼는 교훈적인 시간. 마음 같아선 도둑이 되어 금정연 작가의 일기장을 뺏어다 모두 출판사에 넘겨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만약 에고서칭을 하고 계신 작가님이 이 글을 발견하셨다면, 실행할 마음은 하나도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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