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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e Nov 07. 2024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 절판된 책을 펼치며

도서관에 갈 때마다 미리 생각했던 책에 더해 한 두 권을 꼭 더 빌려온다. 이번에 읽은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이 그 한 두 권이었다. 자기 전 읽을 가벼운 에세이가 필요했는데 그 용도에 적합해 보였다. 미리 경고한다. 이 책은 자기 전에 읽기 적합하지 않다. 우린 모두 각자 고유한 사랑을 하고 있지만 언어라는 결말에서는 한 데서 만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뛰어난 스무 명의 작가가 펼쳐놓은 연애와 사랑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의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책 표지는 헤지다 못해 더 이상의 손상을 막기 위해 투명한 테이프로 칭칭 둘러 감겨 있었다.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을 지난 사람들이 정말 많았구나.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건 없다. 왜냐하면 연애가 시작되면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이란 언제나 실연했을 때 시작된다.  - 정성일, '다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중에서


들켰다. 나도 실연한 이후 연애를 다룬 소설과 에세이, 영화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 했다. 괜히 짧게 요약된 줄거리를 살펴보고,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짧게 고민한 뒤 '보고 싶어요' 목록이나, '나중에 볼 영화' 등에 담아두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별 볼 일 없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면 오만한 표정으로 다음 콘텐츠로 넘어갔다.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정정한다, 연애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에 대해 탐구했다. 내가 도대체 그동안 한 건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나는 왜, 우리는 왜. 함께 답을 찾을 수 있었던 때는 그 답을 찾기 두려워했거나 망설였거나 미루었다. 물을 곳 없이 혼자 남겨진 때는 그 답을 진실로 갈구했지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명쾌한 답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도, 사랑도 명쾌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알고 보니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은 절판된 책이었다. 절판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았다. 절판(絕版). 출판(出版)하여 낸 책이 다 팔리어 없음. 나무위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인쇄를 위한 판을 더 이상 보관하지 않고 파기함. 절판된 이 책의 운명조차 연애의 마지막과 비슷했다. 너무 과몰입했나. 상관없다. 사랑에 과몰입하지 않을 거면 이 책을 읽을 이유도, 다룰 이유도 없다. 부푼 마음으로 나무를 베어가며 찍어냈던 책들은 어느샌가 책장 한편에 먼지를 이불 삼아 덮고 누워 있었겠지. 아무것도 모른 채 한 뼘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책은 그 작은 공간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때가 온다. 끝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책이 쌓여 있어도 그 쓸모보다 치우고 버릴 방법에 집중한다. 책의 끝은 사랑의 끝과 닮았다. 이 절판된 책을 꺼내 읽어 드니, 나의 절판된 사랑들이 함께 펼쳐졌다. 그러니까 다시 말한다. 잠들기 전에 읽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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