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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 내년에도 더 나은 나는 없다

by 김원


영화 <서브스턴스>를 봤다. 대략적인 줄거리도 알지 못 한 채 영화관에 도착했다. 저녁으로 맵고 짠 간짬뽕을 먹은 후였기에, 캐러멜/오리지널 팝콘 반반을 주문했다. 영화를 함께 보러 간 친구 A는 말했다.


"이 영화 좀 잔인하다던데... 근데 나는 징그러운 거 봐도 팝콘 잘 먹어."

"나도! 나도 잘 먹어."


영화가 끝난 후, 잔뜩 시달려 초췌해진 내 손에 들린 팝콘 통에선 아직 팝콘이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고 있었다. 서브스턴스 앞에서 허세 부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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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내 주변에 피부과 안 다니는 여자 친구가 드물어졌다. 보톡스는 기본이었다. 피부 결과 속광, 리프팅 관리를 위해 이름도 생소한 레이저를 수십, 수백 만 원 들여 맞고 있었다. 빼도 박도 못 하게 20대 후반에 들어서니 관찰할 수 있는 변화였다. 나도 핸드폰으로 20대 초반 때 사진을 보면 놀라 소리를 지르곤 한다. 내가 이렇게나 젊고 빛났다고? 휴대폰 화면 속 스물한 살의 나와 거울에 비치는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란 게 신기할 정도다. 세월은 우리 부모님한테만 흐르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도 올해 처음 미간과 이마에 보톡스를 맞아 보고, 기능성 화장품에 돈을 좀 더 투자하기 시작했다. 피부에 적금 붓듯이 맞아야 한다는 수백 만원짜리 레이저의 이름도 익숙해졌다. 이제 유튜브를 켜면 첫 화면에 피부과 시술을 추천하는 영상이 꼭 한 두 개는 노출된다.


외모를 향한 강박과 집착은 또래 여자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술이든 공부든 밤샘이 잦았던 이십 대 초반, 도서관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새벽까지 메이크업을 유지하던 어떤 친구. 중간고사를 보러 오는 날에도 완벽한 옷차림과 아름다운 메이크업으로 나타나던 친구가 있었다. 화장이 사람의 자유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그때도, 지금도 내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녀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내 모습이 좋아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 하겠다. 밤샘 공부에도 흐트러짐 없는 피부와 눈화장을 유지하게 했던 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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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는 이처럼 외모에 대한 집착과 안티에이징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는 보통 여성을 위한 영화다. 그 여성 중 하나로서, 조금 더 부드럽게 위로해 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한가한 소리라는 것을 안다. 영화 특유의 폭력적이고 잔인한, 노골적인 묘사는 여성들이 마주해야 했던 그 폭력적이고 잔인한, 노골적인 시선과 구조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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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한 때를 풍미하던 톱스타 여배우였다. 명성에 먼지가 쌓일 정도로 세월은 지났고, 현재는 아침 방송의 피트니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더 젊고, 아름다운 진행자로 대체될 위기다.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을 비관하던 중 차가 몇 바퀴 구르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만큼 엘리자베스에게는 아름다움이 곧 생명이었으리라. 엘리자베스는 몸에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듣고 오열한다. 그 뒤, 젊은 미모를 뽐내는 한 남자가 엘리자베스의 척추를 위에서 아래로 집어 누른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에게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한다. 서브스턴스가 '내 인생을 바꿨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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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망설였지만 이내 제안을 받아들인다. 집에 돌아와 약물을 주입하자 엘리자베스는 극한의 고통에 쓰러진다. 이때 등을 반으로 가르며 한 생명이 태어난다. 바로 젊고 아름다운 '수'다. 약물의 규칙은 간단하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한 사람이다. 7일마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교대해야 한다. 나이 든 엘리자베스가 수를 창조할 수 있게 했던 약물은 일회용이며, 절대 재사용할 수 없다. 갓 태어난 젊은 엘리자베스, 즉 수는 엘리자베스의 갈라진 등을 꿰매고 당당하게 피트니스 프로그램의 새 진행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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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마다 교대해야 한다는 간단한 규칙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딱 하루만 더 젊음을 유지하고 싶다는 수의 철없는 욕망은 엘리자베스의 신체를 가속노화시킨다. 수는 미래를 팔아 젊음을 샀다. 하루를 더 젊게 살면, 엘리자베스의 손가락 하나는 100살 마귀할멈의 손가락처럼 변한다. 일주일을 더 버티면 엘리자베스의 다리 한쪽이 통째로 노화한다. 엘리자베스는 수를 증오하며 병적으로 폭식하고, 집을 망가뜨리는 등 본인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이후 영화는 절정에 치닫는다.


젊음과 아름다움이 곧 자신의 가치가 되는 여성들의 고통. 곪고 곪아 터져 버릴 것 같은 이 폭력적인 구조의 끝은 어디일까. 한편 젊고 찬란했던 과거와 비루해 보이기만 하는 현재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사람의 내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엘리자베스의 젊음을 향한 욕망은, 젊은 날 누군가에게 사랑받아 본 우리 모두가 겪는 저주이기도 하다. 사랑이 과거형이 될 때 사랑받는 나는 자연히 과거가 된다. 과거는 곧 젊음이었다. 과거를 그리워함은 필연적으로 젊음을 향한 그리움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비롯한 신체는 관객을 사로잡을 정도로 여전히 아름답다. (여전히 아름답다는 시선을 보내는 내가 싫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다운 엘리자베스의 면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유일하게도 엘리자베스 그녀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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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에 집착하며 화장을 고치고, 무언가를 하려면 할수록 거울 속 내가 미워지는 장면을 보고 공감하는 사람이 꽤나 많을 듯하다. 나도 올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망하고 외부의 인정이 고팠을 때 똑같은 경험을 거울 앞에서 한 적이 있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매일 공들여 화장을 했고, 집 앞 편의점에 나가는 길에도 맨 얼굴로 나가는 것이 창피했다. 나 자신을 더 낫게 보이게 하는 화장 없이는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거울을 보면 볼수록 내 못난 모습만 보였다. 결국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끝에 나는 나 스스로 지쳐 떨어졌지만 말이다... 화장도 부지런하고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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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사랑스러웠던 나도, 지금의 조금 못난 나(사실은 못나지도 않았다!)도 결국 같은 나라는 것을 받아들인 후에서야 나의 존재를 버틸 수 있었다. 서브스턴스 약물의 규칙을 기억한다. 둘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 것.


남성중심적인 폭력적인 시선은 사회 전반에 침투해 버렸다. 무례하고 폭력적인 감각 없이 우리는 누군가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있다. 날 이렇게 바깥에서 흔드는데, 끊임없이 스스로 단단해지라는 조언이 미안할 정도다. 종종 이런 영화가 사회를 흔들어주고, 과거로부터 쭉 펼쳐진 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여유가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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