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달과 NGO, 최소한의 상식에 대하여

by 김원

"응달이 뭔지 알아?"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W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친구들과 있는 단체 메신저방에서 응달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어떤 친구들이 응달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다며, 그런 단어를 쓰는 사람이 어딨냐고 핀잔을 준 모양이었다. 나는 응달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거 과학 교과서에 나오던 단어 아니야?"

"맞아! 뜻이 뭔지도 알지?"

"그늘이잖아."

"봐! 넌 이렇게 알잖아. 왜 얘네는 모르지? 어떻게 이걸 모를 수 있지?"


그땐 그저 웃겼다.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는 않지만 당연히 뜻을 알고 있는 단어, 그것도 우리는 상식이라는 선에 넣었다. 응달은 우리에겐 최소한의 상식이었다. 그 상식선을 공유한다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 글과 말로 내뱉지 않아도 당연히 내 삶에 적용되는 불문법 같은 것이었다. 단어의 뜻을 아는 상식 외에도 공감과 분노의 상식이 통하는 친구들과 더욱 가까이 지냈다.


얼마 전 로테이션 소개팅에 나갔다는 글을 썼다. 그것이 첫 번째였고, 그 뒤로 두 번을 더 나갔다. 총 스물두 명의 남자를 만난 셈이다. 서로 대화할 주제를 적을 수 있는 프로필 카드를 작성하는데, 그곳에는 대부분 직업을 밝히도록 되어 있다. 나는 이 공란에 무엇을 적을까 항상 고민한다. 외국계 NGO를 쓸까. 아니야, 너무 특이해 보이나. 마케팅에 필요한 글을 쓰니까 카피라이터라고 쓸까. 콘텐츠 작가라고 쓸까. 고민하다가 외국계 NGO라고 적었다.


난 이것이 불러올 파장을 알지 못했다. 내가 마주한 남성들은 겉보기에 평범하고 괜찮은 분들이 대다수였다. 중견기업과 대기업, 공공기관을 다니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중 절반은 NGO가 무엇인지 몰랐다. 다시 쓰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내 앞에 앉은 남성들은 처음에는 예의 바르고 호기심 짙은 눈으로 내 프로필을 읽더니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NGO가 뭐예요?"


내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도 NGO가 무엇인지는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저 질문을 받는 순간 최소한의 상식선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최소가 아니었다는 것. 아니, 정확히는 어쩌면 최소란 없었다. 난 내 영역에만 있었고, 그 또한 그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아득한 거리감.


내 안에서 두 가지 생각이 싸웠다. 그래도 NGO는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배우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과, 그래도 관련 없는 학과 나와서 관련 없는 직장에 다니면 모를 수도 있는 건가?라는 생각. 어떤 남자는 'NGO가 무엇의 약자인지 알려달라'라고 나에게 요청했다. Non, Governmental, Organization...이라고 말하면서 난 생각했다.


난 NGO가 무엇인지 아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


사람마다 상식선은 다르다. 누군가는 응달을 모르고, 누군가는 NGO를 모른다. 대단한 지식을 요구하는 건 절대 아니다. NGO가 무엇인지 알았으면 했다. 이것은 최소한의 지식선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그를 둘러싼 테두리, 그 안에 축적된 관심사, 배경이 나와 비슷하면 좋겠다는 바람에 가깝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 소개팅이 어땠냐는 질문을 들으면 바로 이 이야기를 꺼냈다. "너넨 NGO가 뭔지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해?" 당연히 나와 같은 학과를 졸업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잘 나누는 친구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난 친구들에게 바깥의 사람들에겐 이게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짤막한 후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소개팅이라는 장치로 나의 경계 밖의 사람들을 처음 대량으로 만나게 되었다. 일련의 경험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 좁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NGO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사람은 본인의 분야에서, 경계 안에서 성장하고 살아간다. 그 경계가 애초에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이제껏 넓은 세상을 보고 있다고 좁은 방 안에서 착각하며 살아왔다. 내가 소개팅으로 배운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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