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위로가 같은 방향으로 걷는 순간
그분과 산책을 나서는 날이면,
평소답지 않게 나의 문장들은 길고 수다스러워진다.
마음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아 두었던 시시콜콜한 걱정들, 누구에게도 선뜻 꺼내지 못했던 뒤엉킨 고민들이 그분 앞에서는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쏟아진다.
그럴 때마다 어르신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마치 몇 걸음 앞의 풍경을 이미 보고 돌아온 사람처럼, 담담하고도 깊은 조언을 건네주신다.
그 목소리에는 삶의 굴곡을 모두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힘이 실려 있다.
어느 날, 한참을 재잘거리다 문득 말문이 막혔다.
붉게 물들어 가는 노을 아래에서 묵묵히 내 보폭에 맞춰 걷는 어르신의 옆모습이 유난히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나의 부산스러운 말들이 그분의 귀한 고요를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뒤늦은 걱정이 마음을 스쳤다.
나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어르신, 저는 어르신과 이야기하면 참 즐겁고 마음도 잘 통하는 것 같아 좋아요.
그런데 혹시… 조용히 걷고 싶으신데 제가 너무 재잘거려서 불편하신 건 아니에요?”
잠시 걸음을 멈춘 어르신은 허허롭게 웃으셨다.
그리고 이내 다정한 온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죄받는 소리 하지 마라.
나도 조 선생하고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가족이 많아도 다들 바쁘니,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할 때가 드물지.”
그 짧은 한마디가 가슴에 툭,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내가 그분께 지혜를 얻고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나 역시 그분의 적적한 시간을 채워 주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콧날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오십 년이 넘는 나이 차이가 난다.
살아온 시대도, 자라온 환경도,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결도 분명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잘 통한다.
아마 숫자로 된 나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서로의 보폭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성실한 고민 상담자이자,
오십 년이라는 시차를 기꺼이 건너온 다정한 친구다. 오늘도 우리는 나란히 걷는다.
서로의 이야기를 비료 삼아,
이 길 위에 조용히 이해의 꽃을 피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