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느라 지나쳐 온 골목 온기
붕어빵 냄새를 맡지 못하는 마음에게
찬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계절이 오면,
시장 골목은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활기를 띤다.
사람들의 외투는 두꺼워지고, 입가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입김은 분주한 발걸음
사이로 흩어진다.
오늘은 어르신을 모시고 오랜만에
시장 나들이를 나왔다. 인파 속에서 혹여 넘어지시지는 않을지, 길을 잃지는 않을지
마음이 쓰여 나는 시종일관 앞만 보며 걷기 바빴다.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저 부딪히지 말아야 할 행인들의 어깨와 시멘트 바닥의 요철뿐이었다.
그때, 묵묵히 보폭을 맞추며 걷던 어르신이 내 소맷자락을 슬쩍 당기셨다.
“조 선생아, 붕어빵 먹고 잡나?”
뜬금없는 질문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내 눈에 들어온 건 투박한 생선 궤짝과 시든 나물 바구니뿐이었다.
붕어빵은 좋지만, 근처에 파는 곳이 있느냐고 되묻자 어르신은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까 지나왔다 아이가.”
정말 못 봤다며 손사래를 치자, 어르신은 오던 길을 되짚어 걸으시며 장담하셨다.
“아이다. 저기 있다. 한 번 가보자.
여기 지나면… 있다! 봐라, 냄새나네. 냄새 나네!”
정말이었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노란 천막 아래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붕어빵 냄새가 먼저 마중을 나왔다.
시각에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계절의 냄새를 놓치고 살았던 나보다,
어르신의 감각은 훨씬 더 삶의 본질 가까이에
닿아 있었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 진짜네요, 어르신!”
하며 웃자, 어르신은 갓 구운 붕어빵 봉투를 받아 드시며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툭 던지셨다.
“조 선생, 이제 보니 공갈쟁이네~”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공갈쟁이.’ 거짓말쟁이라는 뜻의 투박한 사투리지만, 그 안에는 나를 향한 어르신의 애정과 여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쩌면 어르신은
내가 정말 못 봐서 못 봤다고 한 게 아니라,
당신을 지키느라 잔뜩 긴장한 채 앞길만 살피던 나의 경직된 마음을 이미 알아보셨던 걸지도 모른다.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무니 달콤한 팥 앙금이 입안 가득 퍼졌다. 바삭한 껍질보다 더 달콤했던 건, 당신의 노련한 농담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붕어빵 가게’를 놓치고 살까.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걷느라 골목 어귀의 향기를 잊고, 옆 사람의 보폭을 맞추느라 정작 그 사람 마음속 날씨를 살피지 못한 채.
어르신은 오늘 ‘공갈쟁이’라는 농담 하나로
가끔은 뒤를 돌아봐도 괜찮다고,
보이지 않는 향기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말해주시는 듯했다.
시장을 나서는 길, 봉투 속 남은 붕어빵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어르신의 걸음은 느렸지만, 그 느린 걸음 덕분에 나는
볕이 잘 드는 담벼락 아래의 고양이와
가게 앞을 정성스레 쓸고 있는 상인의 뒷모습을 비로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우리 사이의 온기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던 오후.
나는 시장통에서,
붕어빵보다 더 따뜻한 사람의 문장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