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의 청춘을 깎아드리는 오후

조 선생이 이발소 의자 뒤에서 배운 것들

by soosays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가장 평화로운 시간 중 하나는, 90대 어르신을 모시고 동네 작은 이발소에 들르는 일입니다.


오늘은 어르신의 단골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백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어르신의 머리 위에는 눈꽃처럼 고운 흰 머리카락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이발소 의자에 앉아 계신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보송보송한 아기 새의 깃털 같은 솜털 머리가 보입니다.


이발사님은 그 가느다란 결을 따라 조심스레 가위질을 이어갑니다.


삐죽하게 자라난 눈썹까지 정갈하게 정리되는 과정을 곁에서 묵묵히 지켜봅니다.


“이야, 어르신! 스무 살은 더 젊어 보이시는데요!”
내 말 한마디에 어르신은 아이처럼 수줍게 웃으십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살며시 짓는 그 미소에 마음이 몽글해집니다.


그 순간, 바닥에는 사르르 머리카락들이 떨어져 내립니다.


그 가벼운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삶에 대한 숭고한 감정이 밀려오곤 합니다. 사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작 새치 한두 개가 났다며 거울을 보며 불평하곤 했습니다. 이제 나도 늙어가는구나 싶어 우울해하기도 했죠.


하지만 어르신의 하얀 머리칼 앞에서
나의 그런 투정은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저 바닥에 켜켜이 쌓여가는 작은 흰 조각들.


그것은 단순히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아니라,
시간을 온몸으로 버티며 묵묵히 살아온 어르신의 90년 세월 그 자체였습니다.


이발을 마치고 문을 나서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 당당하고 고와 보입니다.


30대의 젊은 요양보호사인 나는,
어르신의 손을 잡고 걷는 이 길 위에서
‘잘 늙어간다는 것’의 품격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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