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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Jan 10. 2016

여행하며 그림 그리기

느린 여행, 제주도 편

여행하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그림 한 장을 그리기 위해 피사체를 계속 유심히 살펴보고 관찰하게 된다.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사진을 찍을 때와는 경험이 다르다. 그곳의 풍경과 그 순간의 느낌을 온전히 내 안에 담는 과정이다. 못 그려도 상관없다. 그곳에 있었던 내가 무엇을 기억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살아있는 기록이다.



내가 여행 다니면서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제 그리는지, 그 자리에서 다 그리는 건지, 그럴 시간이나 되는지, 옆에 남편은 그동안 뭐하는지, 짐이 많지는 않은지.. 등 많은 질문을 한다.




일단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여유 있는 여행 동반자

빡센 여행 일정을 좋아하고 많은 스팟을 찍어야 진짜 여행한 것 같은 사람과 함께 한다면 한가하게 그림이나 그리고 있을 시간은 없다. 어른을 모시고 가야 하는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음 스케줄 파악하고 동선 미리 생각해두고 맛집 찾아두고 입장권 어디서 사야 되는지 파악하고 교통편 챙기고 그때그때 정산하고 등등 '꽃할배'의 '이서진' 역할을 해야 한다면 그림은 사치다.

나는 혼자 여행하거나 남편과 둘이 여행하거나 그림 그리는걸 좋아하는 친구와 여행할 때 그림을 그린다. 그밖에는 거의 그리지 않는다.


2. 적당한 날씨

비나 눈이 오거나 너무너무 춥거나 덥거나 실외에 오래 있기 어려운 날은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거나, 실내에 있을 때만 그린다.


3. 뻔뻔함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고 말을 걸기도 한다. 노골적으로 계속 보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일 하련다 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구도 자체가 문제 되지 않으면 아무도 볼 수 없는 구석자리 가서 그려도 된다.)


뭐.. 이 정도 조건들이 충족되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준비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짐은 매번 바뀐다.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도구가 다르고 나도 그때그때 끌리는 도구가 다르다. 이번 연말연시에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그 여행을 기준으로 준비물을 소개해본다.



이번에는 수채화 도구를 챙겼다. 미니 팔레트, 수채화용 스케치 패드, 작은 물통, 작은 붓, 그리고 필통 안에 들어갈 크기로 잘라 둔 걸레. (지난번 소개한 '휴대용 수채화 kit'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그 외에 휴대용 색연필 10색, 연필과 지우개, 볼펜과 만년필, 돌돌 종이 까서 쓰는 색연필을 가져갔다. 그리고 자잘 자잘한 도구들을 담을 수 있는 필통을 챙겼다. 이번에 챙긴 돌돌 까는 색연필은 가끔  연필보다 찐-하게 그리고 싶을 때 사용하는 도구인데 이번에 제주도 가서 현무암 재질 표현할 때 좋았다. 일반 색연필보다 약간 거친 느낌이 있는데 질감 있는 수채화용 종이에 그렸더니 제주도의 돌 질감이랑 잘 어울렸다.


이 모든 걸 에코백에 담는다. 생각보다 부피가 크지 않다.




이번에는 수채화를 그리고 싶어서 수채화 도구를 주력으로 가져갔지만 마카로 대체하여 짐을 줄일 수도 있고, 만년필과 스케치북만 들고 가면 정말 간편하게 갈 수 있다.




모든 그림을 그 자리에서 그리지는 않는다.


나는 여행지에서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그린다.

- 그 자리에서 그리는 그림

- 그 자리에서 간단히 스케치만 하고 호텔 돌아와서 채색

- 호텔 혹은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보고, 혹은 기억에 남는 인상만 그림



그 자리에서 그리기

간단하게 그릴 수 있는 그림만 그린다. 그 순간을 머리 속에 새기기 위한 목적이다.





호텔이나 집에 돌아와서 그리기

그림을 그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서 여행을 했거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그림이 있다. 그럴 경우 간단하게 그리고 호텔이나 집에 돌아와서 채색을 자세히 하기도 한다.


혹은 '저건 이따가 자세히 그려야지' 하고 사진을 찍어두고 돌아와서 그린다. 돌아와서 그날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여행을 복기한다. 여기 좋았지, 했던 곳 중에 남겨두고 싶은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려둔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 같지만, 즐거워야 한다. 잘 그리려는, 혹은 똑같이 그려야겠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으면 별로 즐겁지 않다. 여행을 나의 시선으로 기억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편하게 즐겁게 그려보자. 느리지만 새로운 여행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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