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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May 31. 2020

5월에 읽은 책

5월에는 평소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집에만 있으니 너무 심심해서.

읽고 싶은 책이 연이어 찾아와서.

요새 아이가 혼자서 노는 시간이 늘고 있는데, 그때 잠시 짬이 나면 아이 앞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책을 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5월에 읽은 4권의 책을 소개해본다.

1. 기록의 쓸모 / 이승희

2. 임계장 이야기 / 조정진

3. 배움의 발견 / 타라 웨스트오버

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기록의 쓸모 / 이승희


작가의 삶의 태도를 재미있게 읽었다. 일을 잘하기 위해 시작한 기록을 업무 외 시간에도 즐겁게, 습관적으로, 꾸준히 해나가는 걸 보고 이 사람은 일을 잘할 수밖에 없구나 생각했다. 이제 기록은 일을 잘하기 위한 수단뿐 아니라, 작가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된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기록을 잘하고 싶다는 자극을 많이 받았다. 나도 기록하는 걸 좋아해서, 작가가 기록하는 소재와 방식 등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책을 다 읽고 하고 싶은 일들이 잔뜩 떠올라 따로 리스트업을 할 정도.


기억하고 싶은 구절:

세상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기록을 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사람. 저는 마케터라 그런지, '기록하는 사람'에서 더 나아가 기록이라는 행위를 사람들과 '공유하는 사람'으로 발전하고 싶었어요.
기록을 남기는 삶은 생각하는 삶이 됩니다.
뭔지 몰라도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 때면 무조건 그 느낌을 어딘가에 잡아둬야 한다. (나는 '잡아둔다'고 표현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내려오는 영감은 없다.
첫째, 왜 쓰고 싶었는지를 기억하자.






임계장 이야기 / 조정진


공기업에서 정년까지 38년간 정규직으로 일하던 작가가 은퇴 후, 비정규직 시급노동자을 시작하는 이야기. 노인 비정규직 일자리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정규직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육체노동자의 삶을 맞아 그 삶의 민낯이 기존의 일터와 더 비교가 되었을 것 같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에 몰입해서 읽었고, 책이 주는 묵직한 메시지에 읽는 내내 마음이 동요되었다.


오랫동안 외면하고 살았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비정규직 육체노동자의 삶이 힘들 거라는 건 짐작했지만, 부끄럽게도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고 살았다. 근데 책의 전반부에 작가의 배경을 보니 코앞까지 다가온 가까운 이야기로 느껴졌다. 누구든 들어설 수 있는 삶이었고, 그 삶은 지금 노동환경이 너무도 열악하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들은 걸핏하면 나한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산재를 입은 직원을 치료해 주는 것은 그들이 알아야 하는 세상 물정이었다. 그들은 세상 물정이라는 말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 긴 세월 동안 치료를 받으려면 빚을 져야 할 것이다. 벌이가 없는 가운데 빚이란 무서운 것이다. 나는 치열하게 살다 보면 병도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 믿기로 했다.
하지만 세상은 기꺼이 손을 더럽히는 사람들에 의해 깨끗이 정리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배움의 발견 / 타라 웨스트오버


작가는 모르몬교 광신도 아버지 밑에서 자란 7남매 중 막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아파도 병원을 가지 않고, 아빠가 정교하게 통제한 폐쇄적이고 왜곡된 세계에서 자란다. 그 세계에 작은 균열을 내고 대학을 들어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고 케임브리지 박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앞에 반 정도는 부부의 세계 1,2화를 보는 것처럼 고구마를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기는 느낌. 뒤에 반은 아 이제 대학을 들어갔으니 편해질까 잠시 기대하지만 K-드라마식 사이다 전개는 없었다. 끝맛까지 씁쓸하다.


책을 읽는 내내 내용에 압도되어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떤 날은 그 지긋한 현실을 벗어날 궁리를 해봤고, 어떤 날은 끔찍한 사고의 현장에서 함께 괴로워했고, 어떤 날은 오빠의 폭력에 대응하는 시뮬레이션을 짜보았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나의 부모님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셨는지, 나는 나의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생각했다.


공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작가의 눈으로 나의 대학생활을 돌아보았다. 교육은 나에게 시험, 스펙, 학벌 외에 어떤 의미였는지, 배움 그 자체에 순수한 즐거움과 몰입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각자 책을 읽으며 되새긴 교육의 의미가 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돈이 갖는 엄청나게 강력한 장점을 경험하게 됐다. 바로 돈 말고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과거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내게 요구되는 대가였다. 이제 이해가 됐다. 아버지가 내게서 쫓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내가 그동안 봤던 SF 장르는 과학기술!!!!!! 어때 내 상상력 엄청나지!!!!!!를 외치는 이야기였다. 근데 김초엽 작가의 SF는 어딘지 서정적이다. 넷플릭스 블랙미러에서 블랙을 좀 뺀 느낌. 유전자 선별, 우주의 다른 생명체, 죽은 사람의 정신세계 복원, 감정의 물성화 등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있을법한 일들을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그 소재로 풀어내는 에피소드와 그로 인해 촉발되는 감정은 지금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약자와 소수자의 차별 등 이 시대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을 과학기술이 발달한 가까운 미래에 놓고 다시 들여다본다.


책의 맨 뒤에 적힌 ‘작가의 말’을 보면 각 단편을 어떻게 생각해냈는지 적어두었다.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한 작가가 자신의 과학 지식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과정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릴리는 자신의 삶을 증오했지만, 자신의 존재를 증오하지는 못했다.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그리고 6월에 읽을 첫 책은 어제 배송 온 조남주 작가님의 신간, '귤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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