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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Jun 30. 2020

6월에 읽은 책

6월이 끝나가니... 이번 달에 읽은 6권의 책을 소개해본다. (원래는 한 달에 한 두권 읽는다.)


1. 귤의 맛 / 조남주

2. 아내는 타인 1 / 사와구치 케이스케

3.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4.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 김규진

5.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6. 말하기를 말하기 / 김하나




1. 귤의 맛 / 조남주


초록색일 때 수확해서 마트로 가는 유통 단계를 거치며 혼자 익은 귤. 나무와 햇볕에서 끝까지 영양분을 받고 노랗게 익은 후에 수확하는 귤. 그 두 귤 사이 어딘가에서 성장하는 4명의 친구들 이야기.


아픈 성장 서사는 항상 나의 마음속 한구석을 찌르는 느낌을 준다. 책 전반에서 10대 아이들의 예민한 감정을 잘 그려내서 그 마음이 더 시큰했다. 이때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공부, 학교, 미래. 근데 혼란스럽고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그래도 되는 나이라고 위로를 주는 책.


나는 그 두 귤 사이 어느 쯤에서 성장했을까. 나의 아이는 어떻게 성장해갈까.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떤 상처를 받으며 클까. 여러 질문을 던져줬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그게 그렇게 울고불고할 만큼 중요한 노트야?"
"울고불고할 만큼 중요해."
"울고불고할 핑계가 필요한 거 아니고?"
(...)
"다른 핑계 찾을 거 없어. 지금 우리 눈물 나는 상황 맞아.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그냥 울어."
초록색일 때 수확해서 혼자 익은 귤, 그리고 나무와 햇볕에서 끝까지 영양분을 받은 귤. 이미 가지를 잘린 후 제한된 양분만 가지고 덩치를 키우고 맛을 채우며 자라는 열매들이 있다.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언제부터 엄마가 윤아, 하고 부르지 않았는지 기억나지도 서운하지도 않다. 그 아무렇지 않은 마음을 슬프고 허탈하게 깨달았다.







2. 아내는 타인 1 / 사와구치 케이스케


작가님에겐 미안하지만 내 취향의 책은 아니었다. MBTI가 안 맞는 사람이랑 대화하는 느낌.







3.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오랫동안 내 위시리스트에 있던 책인데, 이번에 인종차별 이슈에 관심이 생기며 이 기회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이 많아서 천천히 소화하며 읽었다. 유난히 밑줄도 많이 그으며 읽었다. 맞아 맞아 공감하며 읽은 내용도 많고 뜨끔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내용도 많았다.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어 좋았다.


나는 내가 많은 부분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부당함을 개선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동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으로서 차별받는 부분들에 분노했다. 근데 나 또한 어떤 면에서는 다수자가 되어 차별을 '하는'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 국적자, 비장애인, 이성애자, 서울 거주자, 정규직 등 스스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나에게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를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을 할 수 없는 동성 커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한국에서 사는 것을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는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특권을 가졌다는 신호가 있다면 큰 노력 없이 신뢰를 얻고,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안전하다고 느끼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들이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감각의 차이는 두 집단을 가르는 경계에서 생긴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 즉 '그들'을 쉽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적으로 자신이 속한 내부 집단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더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반면 외부 집단은 훨씬 단조롭고 균질하며 덜 인간적으로 보인다. 내부 집단과 외부 집단의 차이를 과장하여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를 중심으로 집단을 가르는 마음의 경계를 따라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집단을 우월하게 느끼게 하는 농담, 달리 말하면 자신이 동일시하지 않는 집단을 깎아내리는 농담을 즐긴다. 만일 상대 집단에 감정이입이 일어나면 그 농담은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 상대를 나와 관계없는 사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겨야 농담을 즐길 수 있다.







4.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 김규진


레즈비언이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거절당하고, 커밍아웃 이후 부모와의 관계 등 심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별 일 아니라는 듯 풀어낸다. 유머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호감을 사기에 최적의 수단이라 믿는데, 이 유쾌한 책 앞에서 한번 더 그 믿음이 강화되었다. 읽으면서 작가를 좋아하게 되고 응원하게 된다.


책에서 소개하는 커밍아웃의 기술. 술 먹으며 각 잡고 커밍아웃을 하면 친구가 무겁고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대낮에 분식집이나 삼겹살 굽다가 갑자기 툭 내뱉는다고 했다. 근데 이 책 전반의 분위기가 그랬다. 누구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부담 없이 썼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하나씩 싸워나가는 과정이 멋있었다. 인사팀에 결혼 경조사금과 신혼여행 휴가를 받아낸 에피소드가 제일 좋았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동성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기대도 된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의 CEO가 되는 게 꿈이라 밝혔지만, 정의당에서 탐낼 인재상이라 생각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당장 거대한 악을 내가 직접 모두 물리칠 수는 없겠지만 하루하루 작은 차별과 혐오와는 싸워나갈 수 있다. 국가에 소송을 거는 건 무섭지만 회사에 신혼여행 휴가를 요청하는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처럼. 작지만 값진 승리는 내 일상과 직접 맞닿아 있으니 동기부여가 되고, 변화를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 보람도 크다.
사실 나는 너희 엄마랑 동성동본 결혼을 했어. 외할아버지 반대가 심해서 내 본관을 다르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고.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누가 동성동본 얘기를 하냐? 동성 결혼도 30년 뒤에는 아무것도 아닐 거야.
그렇게 나는 6일간의 휴가와 50만 원의 경조금 지급을 승인받았다. 이 승인은 동성애자도 회사의 일원이고 같은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로도 읽혔다. 동성애자라고 해서 더 많은 증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부장님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아직은 이 회사에 조금 더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파인애플 열매가 나무가 아닌 풀에서 자란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사진을 보고도 믿지 못해 합성은 아닌지 백과사전을 찾아 팩트체크까지 했다. 지금은 파인애플이 풀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왠지 야자나무처럼 생긴 열대 수목에서 주렁주렁 열릴 것만 같다. 엄마에게 내 정체성이 파인애플 같은 게 아닐까 생각을 했다. 분명히 딸이 여자를 좋아하고, 심지어 결혼식을 할 예정이고 이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딸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낯설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아닐까.


(아, 갑자기 생각난 딴 얘기. 작년에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볼 때 남편이 책 제목만 보고 퀴어 코드의 책이라고 오해했다. 아니야, 이 여자 둘은 그냥 친구 사이고 둘이 같이 살게 된 이야기야. 그리고 이번에 샀던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책 제목을 남편이 보고 이번에는 오해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니야, 이번엔 퀴어 얘기가 맞아.)







5.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외계인과 사귀면 어떨까. 며칠간 내 머리를 가득 채운 이 기괴한 상상은 정세랑 작가 소설책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으며 시작되었다.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사랑하는 한아에게 반한 외계 생명체가 2만 광년의 시간을 건너 지구에 온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기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낯선 행성으로 온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이 이야기는 막상 읽다 보면 개연성이 있다. 자연스럽게 몰입하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소설이다. 낯선 외계 생명체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정하고 예쁘다. 책을 읽다가 낮잠을 자면 둘의 이야기가 꿈에 이어서 나왔다.


책 전반의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했지 감탄하며 읽었다. 주된 플롯과는 상관없이 여기저기 밑줄을 긋게 만들었다.


읽는 각도에 따라 로맨스 소설 같기도 하고 SF 소설 같기도 하다. 종(?)을 뛰어넘는 사랑을 그리는 것 같다가도 지구인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각성하라고 쓴 책 같기도 하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한아는 소화불량과 비슷한 느낌인 서운함의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척추로 색채감을 느끼게 하는 음악을 쓴달까,
"한아를 위해서라면, 우주를 횡단할 만큼 전 확신이 있어요." (...)
"경민 씨는 그게 문제라니까. 우주적 규모로 잘할 필요 없어요. 동네 규모로 좀 잘하면 안 돼?"
디자이너들은 결국 남 좋은 일이 될 걸 알면서도 디테일 하나에까지 성실하다는 점에서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존재들이었다.
주영의 명치쯤이 관통당한 듯 아팠다. 마음이란 거, 육체의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하는구나.







6. 말하기를 말하기 / 김하나


에이, 김하나 작가님이 내향적이라고? 그렇게 말을 잘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극도의 내향적인 성격을 가졌는데 어떻게 남들 앞에서 '말하기'가 편해졌는지 과정을 들려준다. 타고난 말재주꾼이 아닌 후천적 노력형의 입장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도 많이 공유한다. 그러다 보니 '기억해. 너는 말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주문이 더 선명하게 머릿속에 박힌다. 정말 나도 그럴 수 있는 것처럼. 따뜻한 격려가 되는 책이다. 좋아하는 언니에게 응원을 받는 느낌.


내향적인 성격이기에,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다른 사람들을 더 잘 배려할 수 있다. 인터뷰를 해도 더 편하게 말할 수 있게 해 주고, 모임을 열어도 모두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해준다. 자신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장점으로 돌리는 기술은 나도 익히고 싶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항상 '인생은 레벨 업이 아니라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라고 믿는데, 옛날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레벨업한 버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옛날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까지를 모두 다 품은 내가 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는 할 수 있겠다.
나는 '하면 된다'는 말은 싫어하지만 '하면 는다'는 말은 좋아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일단 해보면 조금은 늘 것이다. 그리고 해봐야만 '아, 이 분야는 나랑 정말 안 맞는구나'하고 판단이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지레 겁먹기보다는 해보기나 하자 싶었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안주는 대화다.
"어? 이 얘기 내가 너한테 하지 않았던가?"라고 물으니 친구가 "응, 했어"한다. "왜 말 안 해줬어? 지겹잖아. 들었던 얘기. 이러다 나 나이 들면서 했던 얘기만 하고 또 하게 되면 어떡하지? 무섭네" 나는 이때 친구가 취해서 어눌한 말투로 했던 대답을 잊지 못한다. "야...... 그러면 좀 어떠냐?"





후...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6월을 알차게 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7월의 첫 책은 아마도 지금 배송 중인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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