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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Jun 25. 2020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

닷페이스 온라인 퀴퍼 참가 후기

2006년에 1년간 미국 매사추세츠에 Amherst라는 마을에 살았고, 옆 마을 Northampton에 있는 학교에 방문학생으로 공부했다. 그 학교도 그렇고 그 동네도 그렇고 리버럴 하기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살며 다양성의 가치를 많이 배웠다.



무지개 깃발 연대


지금까지도 그 동네에 얽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무지개 깃발을 꽂아 둔 게이 커플의 집이 어느날 혐오 세력의 테러를 당했다. 창을 다 깨고 난동을 피웠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테러를 당했던 이 일에 동네 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크게 분노했다. 그리고 연대와 지지의 뜻을 모아 그 거리의 모든 이웃이 집 앞에 무지개 깃발을 걸었다.


한 집이 깃발을 걸었을 때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 거리의 모든 집이 무지개 깃발을 걸으니 그중 어느 집에 동성애 커플이 사는지 알기 어려워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었다. 무지개 깃발로 채워진 그 거리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곳이니 혐오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인스타그램을 가득 메운 연보라색 행진



23일 저녁 무렵부터 인스타그램에 심상치 않은 이미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 #온라인퀴퍼 #닷페이스 해시태그와 함께 연보라색 배경에 각기 다른 아바타가 계속 올라왔다. 이미지 하나만 봤을 때는 잘 이해를 못했는데 해시태그를 타고 들어가니, 연보라 배경이 이어지며 도로가 되었고, 사람들의 퍼레이드가 완성되었다.


인스타그램의 3열 그리드 형식에 딱 맞춘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 해시태그 화면을 스크롤하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진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오프라인의 경험을 온라인으로 플랫폼에 딱 맞춰 설계했다.


하루가 지난 지금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 해시태그에는 무려 24.1K의 게시물이 올라와있다.




온라인 퀴퍼, '그들'의 행사가 '모두'의 행사로


이번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퍼를 보며 무지개 깃발로 연대했던 그 골목이 떠올랐다. 이 온라인 퀴퍼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퀴어가 아닌 앨라이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끌어낸 점이었다.


퀴어 퍼레이드에 대해 많이 들어보기는 했지만 한 번도 참여해본 적은 없었다. 뉴스나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주로 봤고 주변 사람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을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지지자들보다는 퀴어 당사자 위주로 참여하기에 커밍아웃의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퍼는 퀴어 퍼레이드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려, 메시지에 공감한다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었다. 거리의 모든 집들이 무지개 깃발을 꽂으니, 모두가 안전하게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사용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놀이


참여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https://pride.dotface.kr/ 에 접속하여, 아바타의 머리, 옷, 아이템을 고르고 완성된 이미지를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와 함께 올리면 된다. 아바타를 만드는 과정이 일단 재미있다. 그리고 휠체어, 성소수자 깃발 등 다양성을 표현하려는 여러 아이템들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재해석하고, 변형하면서 닷페이스에서 애초 기획했던 범위에서 이 프로젝트가 더 확장되며 더 완성되었다. 사용자들이 커스텀하여 반려동물도 붙이고, 커플끼리 참여했다. 유명 작가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퀴퍼 스타일에 맞추어 만들기도 했다. 퍼레이드에 빠질 수 없는 뻥튀기, 강냉이 등도 피드 중간중간에 보이고, 푸드트럭, 생수, 비 오니 우산도 보였고, 코로나 조심하라고 방독면도 있다. 부스 참여로 책을 판매하는 출판사도 눈에 띄었다. 피드에서 배경음악으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Born This Way를 틀어줬다. 사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 기획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이 프로젝트는 기획부터 실행, 태그라인, 올바른 메시지, 쉽고 재미있는 UX/UI, 강렬한 일러스트레이션, 사용자들의 능동적 참여 등 모든 면에서 놀라움의 연속이다. 나로서는 서비스 기획자로, UX 디자이너로, 취미 그림러로 이 프로젝트의 과정을 지켜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너무 멋져, 대단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계속 감탄했다. 누가 또 참여했나, 어떤 재미있는 놀이가 또 올라왔나 계속 찾아보게 되었다.


닷페이스 내부자들의 인터뷰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실무자들이 어떤 생각으로 처음 기획했는지부터 진행과정과 오픈 이후 반응에 대한 내부인들의 소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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