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디 Sep 09. 2017

여행의 모든 터치포인트를 장악하자

에어비앤비 트립(Airbnb Experience) 이용 후기

에어비앤비에서 작년에 '트립'이라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영문 버전에서는 Experiences라고 나온다.) 현지 전문가/가이드와 여행지에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서비스.


서비스를 발표했을 때부터 궁금했는데 얼마 전 다녀온 로마 여행에서 '트립'을 처음 써보았고, 새로운 차원으로 여행을 경험했다. 나의 안전지대(comfort zone)를 벗어나니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그냥 좋고 말았던 경험이 아니라 남들에게 계속 얘기하게 되고 적극적으로 권하게 되었던 경험이다. 여행의 욕망은 '남들이 가지 않은 곳'에서 '남들이 하지 않은 경험'으로 점차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여행은 경험으로 기억된다


트립 리스트만 봐도 신선하고 재미있는 게 너무 많다. 정말 다 해보고 싶었다. 로마 기준으로 인상적이었던 예시 몇 가지.


쿠킹클래스

어반 가드닝

현지인이랑 같이 쇼핑 다니기

말을 타고 유적지 돌아다니기

트러플 헌팅

춤 배우기

그림 그리기

로마의 스트리트 아트 투어

플로리스트와 함께 웨딩 플로워 체험 (+현지 결혼식 구경!)


나는 쿠킹클래스와 어반 가드닝을 체험했다. 현지 셰프를 만나 시장에서 재료를 사고 요리를 배웠고, 현지 가드너를 만나 그녀의 정원을 구경하고 함께 정원 손질을 했다.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설레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쿠킹클래스는 트립을 제공하는 어느 도시에서든 공급도 수요도 많다. 내가 들은 쿠킹클래스 기준으로 트립의 경험을 간단하게 소개해본다. 현지 셰프 실비아와 함께 장을 보고 요리를 했다. 재래시장에서 만나서 장 보는 팁을 알려주고 각 재료를 설명해줬다. 장을 본 뒤 실비아의 집 루프탑에서 요리를 했다. 루프탑에 요리를 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로마에서 전망이 끝내주는 루프탑에서 현지 셰프에게 이탈리안 요리를 배우다니, 뭔가 비현실적으로 낭만적이었다. '로맨틱(Romantic)'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수긍이 가는 순간이었다. 파스타, 호박꽃 튀김, 티라미슈를 만들었다. 


요리를 만들고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현지 셰프와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이렇게 오래 친밀하게 얘기를 나누는 경험 자체도 소중했다. 셰프는 자신의 본업과 로마에서 레스토랑을 할 때의 어려운 점, 에어비앤비를 하게 된 계기 등을 이야기해주었다. 그 외에 로마에서 맛집을 고르는 팁과 본인의 맛집 리스트도 알려주었다. (현지 셰프가 알려주는 맛집이라니!) 다른 여행자들이 여행을 온 계기도 재미있었고 서로 유용한 여행정보도 제법 공유했다. 


관광 책자나 블로그에서는 읽을 수 없는 이 도시의 이야기를 듣고,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에어비앤비의 빅 픽처(?)


트립을 이용하며 에어비앤비가 앞으로 가려는 전략적 방향이 보여 흥미로웠다. 시작은 현지인 숙소였지만, 지금의 행보를 보면 여행의 모든 터치포인트를 장악하여 최고의 경험을 주려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슬로건도 "Belong Anywhere"에서 "Live There"로 바뀌었다. 현지인의 숙소에 머물며 '소속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이제는 현지인과 교류와 경험을 나누며 '살듯이' 여행을 경험하라고 한다.(Don't go there. Live there.) 






Masters of Scale 팟캐스트에서 에어비앤비 CEO인 브라이언 체스키가 직접 전한 초창기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단 한 명의 여행자를 위해 최고의 여행을 기획했다. 이를 위해 경쟁 여행산업이 아닌 영화 산업에서 영감을 얻었다. 픽사의 스토리보드 작가를 고용해서 시나리오를 짰다. 공항에서 내릴 때부터 시작하여 디너파티, 레스토랑 최고 좌석 예약, 한밤중에 진행하는 미스터리 바이크 투어 등 정교하게 설계했다. 이 여행이 끝나고 이 사람은 돌아가는 길에 브라이언 체스키에게 울며 고맙다고 말한다. 최고의 여행이었다고. 




이 프로젝트로 브라이언은 여행의 end-to-end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여행을 2시간의 영화라고 생각하면 숙소에서 머무는 시간은 20분 남짓이다. 


트립을 체험해보고 팟캐스트를 들어보니 브라이언이 이야기하는 '최고의 여행'에 이르는 여정에 '트립'이 있다고 느꼈다. 팟캐스트에서 소개한 내용이 트립 곳곳에 녹아있다. 





우리는 여행이 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전에는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가 특별했다. 여행이 대중화된 이후에는 '남들이 가지 않은 특별한 장소'를 찾아 떠났다. 하지만 이젠 아일랜드, 남미, 아프리카까지 미디어에서 훑었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친구들의 피드를 봐도 숨은 곳들을 누군가 다 다녀와서 새로운 여행지가 현저히 줄고 있다. 가지 않아도 간 것 같고 처음 가본 곳도 어딘가 익숙한 랜드스케이프처럼 느껴진다. 에어비앤비의 트립을 써보고 '특별한 장소'의 다음 키워드는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시대의 맥락을 읽고, 분명한 방향을 잡아두고, 흔들림 없이 한 걸음씩 가고 있는 에어비앤비의 모습이 주목할만하다. 앞으로 맛집이 될지, 운송수단이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단계로 에어비앤비에서 준비하는 여행의 터치포인트도 기대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50만 원이 넘는 제품을 온라인에서 파는 법 -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