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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신 Jun 03. 2018

Grown up 과 Growing up

다 자라셨나요? 아니면 아직도 자라는 중인가요?

어쩌다 보니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 지도 15년이 다 되어가지만, 교수가 되고 싶은 생각은 본래 없었습니다.


기아자동차에서 일하던 당시 인덕대학교에서 가르치시던 유석순 교수님께서 강의를 나오라는 권유를 여러차례 사양하다가, 1988년 즈음에 강의를 나가게 되기는 했어도, 정식 교수가 되고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겸임교수를 2000년 미국으로 건너오기 바로 직전까지 여러 대학교에서 10년 넘게 했었고, 내가 가르친 것을 좋아한 학생들도 많았(었던것 같)고, 또 몇몇 대학교에서 러브콜이 오기도 했지만 한번도 교수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좋은 교수님들도 많은 반면, 그렇지 못한 교수들도 많았기 때문에, 기업체보다 덜 경쟁적인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대학 사회로 옮기면 나도 모르게 그런 모습이 될까봐 아예그 쪽으로는 눈길도 주고 싶지 않아서였던것 같습니다. 또 기업에 있다가 학교로 옮긴 사람들은 어쩐지 기업에서 적응을 못한 디자이너들처럼 보이기도 했구요.


미국으로 건너온지 3년 정도 지난 어느날, 화장실에 앉아서 미국 산업디자이너협회가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뒤적거리다가 맨 뒤장에 있는 신시내티 대학교의 교수 모집 공고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눈길이 끌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이미 마감이 지난 후였지만, 곧바로 인터뷰 요청이 오고 결국 좋은 연봉의 직장을 떠나 대학으로 옮긴 것이 2003년 여름이었습니다. 


신시내티 대학교 DAAP단과대 입구에서


그 후 15년 정도 신시내티 대학교와 College for Creative Studies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나의 커리어는 2003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때 대학으로 옮기지 않았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몸을 담고 보니 전에 보던 그런 교수들, 즉 수십년 동안 같은 것을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교수들이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미국 대학 교수들의 "철밥통"은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한국 대학의 테뉴어, 즉 정년 교수는 65세 까지의 교수직을 보장해주는 반면, 미국 대학의 테뉴어는 종신 보장, 즉 평생 교수직을 보장해 주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는 칠십세가 아니라 팔십세가 넘은 교수들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테뉴어는 받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일단 받고나면 평생이 보장되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태뉴어를 받고 난 교수들은 대부분 두가지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보다도 더 열심히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이고, 또 하나는 철밥통을 끌어안고 별반 노력을 안하는 교수들입니다. 결정적인 잘못이 없으면 그만두게 할 방법이 없으니 대학으로서는 후자에 속하는 교수들이 골칫거리이지요. 그래서 요즈음은 테뉴어 제도를 없애는 대학들도 있고, 테뉴어를 주지 않는 형태로 교수를 채용하기도 합니다.


나는 2007년에 신시내티 대학교에서 테뉴어 교수, 즉 종신교수가 되었지만, 테뉴어 제도는 없는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테뉴어 제도에 대한 것을 쓸 건 아니니까 이 정도로 줄이기로 하지요.


신시내티 대학교에서 처음에는 부교수로 시작했다가, 3년인가 후에 산업디자인과 학과장이 되고, 또 3년 정도 후에는 공개 초빙 과정을 거쳐서 디자인 학부 전체를 담당하는 학부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평교수시절에는 그저 내 수업만 맡아서 잘하면 되었는데, 학과장이 되고나니 학과 전반 - 학과 회의 주재, 교과과정 개선, 강사 채용, 학과 설비 등 - 에 할일이 참 많아졌습니다. 나중에 학생 1200명 규모의 디자인 학부 전체를 맡게 되고 나서는 정말로 할 일이 더 많아진 것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학부면 웬만한 단과대학 수준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2007년 3학년 학생들과 함께


화장실에서 읽은 뉴스레터때문에 시작하게 된 교수직은 참 중요한 경험들을 주었습니다. 그 전에도 디자이너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학에서의 연구와 강의를 통해서 디자인을 새롭게 발견한 시간이기도 했고, 몇년 정도만 머물렀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던 계획과는 달리 미국의 디자인 및 디자인 교육계에 뿌리를 깊게 내리게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기 위해서 초록을 여러번 보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채택이 되지 못하다가 결국은 여러 학회에서 발표를 하게 되고, 나중에는 기조강연으로 여러번 초청을 받게되는 경험은 나의 연구 주제를 더 깊이, 더 설득력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영어실력이 더 나아진 것은 덤이구요. 또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의 교육 분야를 담당하는 부회장으로 출마해서 회원 투표를 거쳐 선출된 것은  디자인 교육계에 있어서의 문제는 뭔지, 또 희망은 무엇인지를 많이 생각하게 되기도 했구요. 학기 사이의 브레이크때는 물론, 학기 중에도 학회나 대학에서의 강연을 위해 여러나라를 다니는 바람에 델타항공 Skymiles 프로그램의 platinum membership을 한 해도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매년 대략 10만 마일 정도를 날아다녔더군요. 모르긴 해도, 신시내티 대학의 그 어느 교수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하늘에서 보냈을 겁니다. 농담으로 동료들에게 내가 pilot인지 pirate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렇게 10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가을에 헤드헌팅 회사로 부터 이메일 하나를 받게 됩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예술대학인 College for Creative Studies (CCS)에 부총장 직에 관심이 있느냐는 거지요. 물론 내 대답은 아니다 였습니다. 이미 신시내티 대학교에서 종신직 교수으로 있고, 미국내에서 랭킹 1, 2위인 디자인 학교의 학부장이었으며, 연봉도 좋은데 굳이 다른 학교로 옮길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서 2014년 1월 CCS에 부총장 및 Provost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Provost란 우리말로 하면 교무처장 정도로 번역이 되는데,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에서 Provost라고 하면 총장 바로 다음의 직책입니다. 총장은 학교의 운영에 중점을 두고, Provost는 학교의 교육 전반을 총괄하는 거지요. 


Provost로 취임해서 얼마 안되어 모든 교수를 부른 자리에서 제가 교수들에게 주문한 내용이 이번 글의 주제, 즉 본론입니다. 서론이 참 길었습니다.


CCS 대학원 학생들과 대학원 교수들. 2016년


새로 온 부총장이 뭔가 한마디 한다고 하니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하나 얼마나 궁금했을까요. 게다가 동양인이라고는 자동차 디자인 학과의 일본인 교수 한 명 밖에 없는 대학교에서 동양인 부총장이라고 하니 더 궁금했을 수도 있구요. 전임 교수들 뿐만 아니라 외부 강사들도 꽤 많이 왔던 것으로기억합니다. 이 사람들은 내가 이제부터 열심히 일하자는 등의 뻔한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때 제가 한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들이었지요.


1. 학교를 위해서 일하지 마라. Don't work for the college.


교수들의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열심히 일해 달라고 할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내가 한 이야기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당신들은 모두 학교에 속한 교수들이니 학교를 위해서 뭔가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거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학교를 위해서 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예술가,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될 지만 생각하고 그대로 해라.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을지만 생각하고 그대로 해라. 즉 나는 당신들이 show off할 수 있을 만큼 멋진 디자이너, 멋진 예술가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대학은 건물이나 설비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들이므로, 당신들이 가장 훌륭한 예술가들이 되면 우리 대학은 자연스럽게 가장 훌륭한 대학이 될거다. 
그러니 학교를 위해서 일한다는 생각을 하지말고 여러분들 스스로를 위해서 일해라. 내가 아낌없이 도와줄테니까.


2. 선생과 교수의 차이를 기억해라. Know the difference between teachers and professors.


사실 나와 그 일본 교수를 빼고는 다들 영어가 모국어인 교수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선생과 교수의 차이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내가 설명합니다. 다들 속으로는 무슨 말을 하려는거야 라고 생각했겠지만, 바로 전에 상식을 뒤집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귀를 안 기울일 수 없을 겁니다. 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선생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학문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수학 선생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체계인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따라서 선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같은 수학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늘 생각하는 것이다. 
교수들도 당연히 잘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수 개개인의 고유한 연구와, 그 연구의 내용으로부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같은 것을 가르치는 선생을 있을 수 있지만 (물론 더 잘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의 차이는 있어도), 같은 것을 가르치는 교수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더 훌륭한 예술가, 디자이너, 교수가 되려면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연구를 들고 파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그게 없다면 나는 그런 사람들을 교수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아직 자신만의 연구를 해 본 적이 없다면 내가 발벗고 도와줄거다.


3. 다 자랐다고 생각하지 마라. Don't think you are grown-ups.


교수들의 반 정도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고, 그 학교에서 심지어 40년 정도를 가르친 교수들도 몇 있었습니다. 대부분 관록이 있는 교수들이지요. 이런 사람들에게 내가 이야기 합니다.

당신들이나 나나 다 어른 들이니까 우리는 grown-up 들이다.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내가 좀 더 생각을 해 봤는데 grown-up이라면 이미 성장이 끝난 사람들이라는 뜻 아니냐. 그럼 성장이 끝났다면 이제부터는 시들어간다는 뜻인데, 이건 좀 곤란하다. 마치 가만히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들리지 않나.
내가 원하는 삶은 grown-up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growing up하는 삶이다. 나는 내가 어제보다 얼마나 더 자랐나, 어떻게 더 자랐나에 관심이 있다. 얼마나 더 새로운 시각이 생겼나, 어떤걸 더 새롭게 할 줄 알게 되었나 하는 것들에 관심이 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growing up하는 삶이다. 난 죽을 때 까지 이렇게 살거다.
여러분들도 growing up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다들 훌륭한 예술가, 디자이너, 교수지만,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바라고, 또 그런 계획을 세우기 바란다. 그런 교수들은 내가 무조건 도와줄거다. 만일 학교에 예산이 부족하면 은행을 털어서라도 도와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grown-up 생활에 만족하는 교수들은 다음번 재 계약때 내 사인을 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라.

우리학교 교수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여기다 굳이 적은 이유는 이것들이 교수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입니다. 기업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에게라면 아마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겠지요.


- 회사를 위해서 일하지 마라. 대신 멋진, 의미있는, 누구라도 탐낼 그런 디자이너가 되어라.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회사가 잘 되도록 해주는 디자이너들이다.

- 디자이너와 디자인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차이를 기억해라. 그리고 디자이너가 되어라.(이 전 글에 이런 식의 이야기를 자주 했기 때문에 여기 또 적지는 않겠습니다) 

- 다 자랐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건 이런 식으로 하는거야'하는 공식을 가진 디자이너가 되지 말고, '이번에는 이런 식으로 해 볼까'하는 생각을 하는 디자이너가 되라. 또 '아직도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은 어떤걸까'하는 호기심에 심장이 뛰는 디자이너가 되라.


나는 아직도 덜 자란, 계속 자라는 중인 디자이너, 디자인 교육자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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