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수킴 Oct 19. 2023

그래서 영국에 왜 간 거야?

프롤로그

    

나는 여느 한국인과 다름없이 한국에서 나고 자라 대학교까지 졸업했다. 학창 시절의 나는 장난기가 많았지만 동시에 겁도 많은 소녀였다. 늘 정해진 틀 안에서 남들과 똑같이 공부는 하면서도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의 나이서열, 직위나 가족화된 호칭 사용, 회식 문화 등 전반적인 사회 구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면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도 답답했다. 왜 A는 꼭 B여야만 하고, B가 아니면 눈치를 봐야 할까?  


그냥 냅다 결정해 버린...

대학교를 다닐 때도 늘 해외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처럼 일에 파묻혀 살아야 하는 환경이 아니라 퇴근 후의 삶이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온스타일 채널을 즐겨보며 뉴욕에서 활동하는 모델이나 패션디자이너들의 삶을 동경했다.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하고 카페에서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는다면 참 살 맛 나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갓 대학을 졸업한 내가 미국에서 취업비자를 따는 건 하늘에 별따기로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친구로부터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 좋아! 그럼 영어의 본고장 영국으로 가보자!
영어를 쓰는 나라니까 미국이나 영국이나 똑같겠지!

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결정을 한 것이었다. 발음이 다른 지도, 문화가 그렇게 다르다는 것도 모른 채...평소에 편의점에서 간식을 고를 때는 정말 오래 걸리고 결정을 자주 번복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큰 결정은 한 번에 하는 편이다. 망설임 없이 IELTS 시험을 보고 유학원을 통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후다닥 준비했다. 영국 워킹 홀리데이 제도가 생긴 지 겨우 1년밖에 안 된 터라 경쟁률이 낮아서 한 번에 붙었다. 그렇게 2013년 9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떨리는 마음으로 런던으로 날아갔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려는 자, 그 충격을 버텨라

그때는 몰랐다. 영국에 이렇게 오래 있을 줄은... 워킹 홀리데이 2년에, 취업비자로 5년... 중간에 1년 공백이 있었지만 총 7년이란 시간 동안 영국에서 살면서 결국 내가 원했던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한국에 살던 때보다 훨씬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여기서 크게 깨달은 점 시야를 넓히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는 걸 막연히 환상화했던 것 같다. 그냥 그곳에 살면 자연스럽게 변화할 줄 알았다.


순진한 바보였던 것이다. 


실제로 겪은 현실에서는 나와 너무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수백 번 충격을 받아야 했다. 그늘보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 앉는 사람들, 펍에서 앉지 않고 서서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약속을 흐지부지 여기는 사람들, 읽고 답장 안 하는 게 흔한 사람들 등등... 내가 겪었던 한국 사람들과 많이 달라서 화나고 눈물 날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영어로 말하는 게 부끄러웠고, 혹시나 나로 인해 한국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이것저것 신경을 쓰느라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늘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살다 보니 굳이 남들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나답게 행동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내가 있던 곳은 런던이다. 런던은 알다시피 영국인보다 외국인 비율이 더 많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다. 일반화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인간들이 다양하다면야 결국엔 나답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는 동양인이니까 외국인이라고 여길 확률이 높다. 그래서 다짐했다. 영어를 못 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아무렇지 않게, 유럽 애들처럼 그저 능청스럽게 틀린 영어를 내뱉자!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변한 걸까? 


나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영국에 대한 학문적 지식도 얕다. 내가 들려줄 이야기는 다 맨땅에 헤딩하며 겪은 것들이다. 영국 문화를 살짝 핥은 수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나의 생활습관부터 가치관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칠 만큼 크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면서 벌어진 이런저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졌다. 내 이야기를 통해 영국에 대한 지식보다는 영국에서 제 3자로 살면서 느낀 점 정도로 가볍고 재밌게 읽어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