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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킴 Dec 16. 2023

취미가 없어졌다

생산성에만 집착하다보니 어느덧 순수한 재미를 잃어버렸다

요즘 발등에 불이 타고 있다.

풀타임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동안 글만 썼다.

11월이 되었고 아 이제 진짜 돈 벌어야지 다짐했다.

하지만 12월 말까지 쓰려던 에세이 꼭지 50개를 채우는 걸 우선순위로 하되

생활비 정도만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본업으로는 그래픽 디자인과 애니메이션일을 한다.

영국에서 7년동안 풀타임 일을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프리랜서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그러다 돈이 없어져서 부랴부랴 한국 풀타임 회사를 다녔으나

영국의 느긋한 회사문화에 길들여져서 그만두었다.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왔지만 사실 모션그래픽을 포함해 컴퓨터앞에서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긋지긋하고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몸을 쓰고 싶었다. 돈을 덜 벌지라도 차라리 몸쓰는 일을 하며 고정수입을 벌면서 글을 마저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통역 알바를 시작했는데... 이거 참 부당한 계약에 시급이 얼토당토않게 이상했다.

1시간에 2만원인데 1시간 30분은 2만 5천원에 3시간은 4만 5천원이란다.

이 또한 그만두게되었다.


결국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크몽에 아이콘 디자인일을 등록했다.

사실 크몽 또한 하고 싶지 않았다. 수수료가 15%에다가 프리랜서 가격이 처참하게 낮았다.

하지만 지금 영국 프리랜서 수요는 시차가 2시간차가 나지 않는 쪽으로만 많아서 어쩔 수 없이 크몽에 등록을 하였다. 다행히 작업의뢰는 종종 들어왔다. 하지만 또 다시 현타가 왔다.

이 가격으로 내가 지금 몇일째 내 본업을 하다니.

30만원 받고 5일동안 모션그래픽일을 했다.

심지어 크몽이 수수료를 떼가서 23만원이다.

하. 정녕 난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가 있는 걸까?


글쓰고 있는 것은 뉴스레터로도 발행하고 있다.

뉴스레터 홍보를 위해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시작했다.


결국 나는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못해 본업일 + 글쓰기 + 글쓰기콘텐츠 홍보까지.

세 가지 다 시작 단계라 방황하고 있다. 

세 가지 모두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등의 궁극적인 물음표로 가득하다.


결국 요즘 내 하루는 이 세가지를 하며 사느라 정신이 없다.

집 밖으로 나가지는 않지만 머릿속은 터질 것 같고 돈을 쓸 때마다 심장이 벌벌 떨린다.


몇일 전 남자친구가 내게 말했다.

"지금 보니까 너의 일상에 너가 스트레스를 풀 만한 루틴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그렇다. 돈을 아껴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취미학원들은 꿈도 꾸지 않았다.

돈돈돈. 돈이 없으니까 친구들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다.

나의 모든 생각은 돈을 어떻게 하면 벌 수 있을까. 인 것이다.

상황상 그럴 수 밖에 없지만, 영국에서 살던 시절의 그 여유로움이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속상하다.


취미란 무엇인가.

취미란 그야말로 내가 아무 생각없이,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순수한 재미를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다 자기계발 혹은 내 건강을 위한 것들이다.

운동도 내 건강을 위해 헬스를 한다. 헬스를 하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건강도 좋아지겠지만 그렇다고 날 릴렉스해주는 활동은 아니다. 몇달 전에 하와이춤을 배워본 적이 있다. 그건 내 긴장을 풀어줄 줄 알았지만 막상 배우니 춤을 외워야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역시 한국이다보니 느슨한 훌라춤일지라도 선생님이 '수수님은 ~부분을 좀더 하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지적을 하셨다. 물론 더 잘하는 게 좋겠지만 결국 이런 춤 또한 다 배우는 활동인 것이었다. 배우다 = 자기계발? 압박 없이 배울 수는 없는 걸까? 그냥 못해도 괜찮은 취미를 널널하게 한 적이 있던가?


일할 때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 잘 하려고 힘을 많이 주는데 일을 안 할 때조차 학원을 다니면서 '잘' 해야한다는 게 힘들다. 그렇다면. 난 어떤 취미를 가지는 게 좋을까...?


생각해봤는데 문득 음악감상이 떠올랐다.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자주 듣는데 요즘 정신이 돈에 쏠려있다보니 전혀 음악이 꽂히지 않아서 들어도 아무 영혼없이 대충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문득 한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 노래... 낯설지는 않았지만 오늘에서야 내게 훅 꽂혔다.


https://youtu.be/3TnSpUrD8sQ?si=CYdQ-wDm3NS4DqKm


힘을 쭉 뺀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둥둥 치는 드럼소리가 나를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그렇다!

내 취미는 당분간 음악 감상을 하면 되겠구나!

생산성이 아닌, 그냥 분위기에 취하는 시간을 짧게라도 가져야겠다.


갓생 갓생 하지만.

사람은 자고로 non-생산적 취미는 있어야 영혼이 숨쉴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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