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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킴 Oct 20. 2022

일반화하기 어려운 사람들

한국에는 늘 유행이 있다. 머리 스타일, 패션, 사진 포즈, 심지어 건배사까지 유행한다. 그것에 뒤쳐지면 촌스럽게 여겨진다. 대다수 사람이 선호하는 것을 일반화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한국인들은 서 있는 것보다 앉아서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공원에서 햇볕을 바로 맞는 것보다 햇볕을 피해 앉는 것을 좋아한다. 뿐만 아니라, 옳다고 여기는 윤리적 기준이 비슷하다. 공공장소에서 크게 떠들면 예의 없다 말하고, 애인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사심을 품고 접근하면 '양다리 걸치는' 것으로 의심한다. 난 한국의 획일적인 시선이 싫었다. 영국으로 떠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도 영국 나름의 공통된 뚜렷한 기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국에는 유행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 그나마 유명한 티비 쇼 '러브 아일랜드'나 넷플릭스에 새로 뜨는 콘텐츠 정도를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정도였다. 한국처럼 생활 곳곳에 모두가 함께 진행 중인 유행은 없었다. 패션조차 유행을 따르는 사람은 적었고 주로 각자 취향에 따라 옷을 입었다. 늘 검은 옷에 통굽만 신는 사람, 호피무늬만 입는 사람, 타투와 피어싱 자체가 패션인 사람 등 스타일별로 나눠서 하나의 부류로 간주할 수 있을 뿐이었다.


지배적인 취향을 파악하는 것도 힘들었다. 한국은 ‘카카오 프렌즈’처럼 전 국민이 애용하는 귀여운 캐릭터가 많다.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메시지를 전할 때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영국에서 이런 스타일은 그저 다양한 취향 중 하나에 불과했다. 심지어 유치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오히려 괴기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료 알렉은 영화 에얼리언 속 외계생명체를 디자인한 사람을 존경했고, 다른 동료 템진은 흰자까지 까맣게 문신한 여자 타투이스트를 자신의 아이돌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수염 없는 남자를 말끔하고 훈훈하다고 여기지만, 영국에서는 아직 덜 자란 어린 남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수염과 가슴털이 수북한 남자가 인기가 더 많았다.


다양한 취향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규칙과 윤리성에서는 긴 시간동안 혼란스러웠다. 이웃집이 바닥이 울릴 정도로 음악을 크게 트는 것에 관대한 편이었다. ‘쟤네도 주말이니까 놀아야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하우스 메이트를 보고 놀랐다. “내 집이니까 내 마음대로 크게 틀 수 있는 거야!” 반복되는 파티 소음에 지쳐 이웃집 문을 두드리면 흔히 듣는 말이었다. 물론 다른 외국 하우스 메이트도 시끄러운 이웃집에 찾아간 간 적도 있었지만 한국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도수가 적었다.


코로나 상황을 받아들이는 영국인의 태도 역시 우리와 극명하게 달랐다. 나는 한국에 계신 엄마의 어마어마한 걱정 속에 코로나 시기를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감염자수가 5만 명을 육박해도 밖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실내에서 쓰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이 때문에 극도로 긴장했고, 손을 하루에도 수십 번 씻었다. 영국 백인들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이기적인 것들!’ 내 마음은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 친구들 중가장 유난 떨던 내가 유일하게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주의한들, 결국 걸릴 사람은 걸리는구나. 뭐 하러 남들을 의식하고 그들은 나와 같지 않다고 비난했을까. 


이후 나의 모든 당위성을 내려놓게 되었다. 나의 생각과는 너무 다른 외국인들을 보며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너무 깔끔한가? 내가 너무 안전을 따지나?’ 끊임없이 자문했다. 한국인 눈으로 “A는 B여야 해. 왜냐고?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맞아.”로 생각하던 걸 탈탈 털어버렸다. 영국은 획일성보다 개인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나라였다. 내 눈에 A는 B일지라도 옆 사람 눈엔 C로, 앞 사람 눈엔 D로 여겨졌다.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걸어 다녔다. ‘아. 남들 눈치 볼 필요가 없구나. 나는 나대로 살면 되겠구나!’ 영어를 쓸 때도 ‘이게 내 발음이야. 너희들이 알아서 이해해!’라는 태도로 술술 내뱉기 시작했다. 한 가지 문화에 뿌리박혔던 나의 생각은 장작 7년 만에 꿈틀대며 움직였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한국 문화에 맞춰 공공예절은 잘 지키고 있지만, 내 의견을 말할 때엔 자신감과 여유가 더해졌다. 더 이상 ‘모든 것은 이래야 맞다.’는 관념이 많이 줄어들었다. 한결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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