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수킴 May 18. 2022

곤니찌와, 니하오

영국생활 에세이 006

“니하오!”

“곤니찌와!”

 영국에서 길을 걸어가면 남자들이 종종 이렇게 말을 건다. 흔히 ‘캣콜링’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보통 ‘도를 아시는 분’밖에 없다. 서구권에서는 낯선 사람과 편하게 한담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문화가 캣콜링이라는 부작용을 낳아버렸다. 특히 동양여자면 캣콜링을 당하는 일이 더 많이 벌어진다. 남성보다 약한 ‘여자’이자, 작고 순종적인 이미지의 ‘동양인’이기까지 하니 얼마나 만만하겠는가. 심지어 한국어로 ‘안녕’도 아니라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라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니하오”, “곤니찌와”를 건넨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결합된 말풍선을 가볍게 던진다. 툭툭 던지는 말이 듣는 사람에겐 폭탄처럼 무겁다. 저 무식한 이들을 어쩌면 좋을까. 

캣콜링: 길거리에 지나가는 여성을 향해 남성들이 휘파람을 불고 추근거리는 말을 한 마디씩 던지는 것


 보통 캣콜링을 하는 사람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남자들이다. 내가 살던 동네는 힙스터와 이민자가 혼재하는 동네였다. 개성 있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함께 투박한 분위기도 감내해야 했다. 보통 털이 수북한 아랍계 아저씨나 흑인 혹은 백인 할아버지가 캣콜링을 했다. 처음에 ‘곤니찌와’를 들었을 때는 ‘나 일본인 아니거든!’이라고 바로 받아쳤다. 그럼 그들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어떤 때는 그런 사람들에게 ‘함부로 남의 국적 판단하지 마! 그건 인종차별이야!’라고 대응할 때도 있었다. 제딴에는 호감을 표현한 건데 내가 정색한다고 오히려 무안해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이런 일이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보니 지쳐갔다. 굳이 저 사람들에게 내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무지한 사람인데 내가 대응한다고 깨우칠까. 


 어느 겨울, 친한 친구가 런던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재기발랄하고 예측불가능한 반응으로 주변을 웃기는 친구였다. 우린 전시회를 보러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평일 낮이라서 지하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우린 지하철 맨 끝 칸으로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었다. 띄엄띄엄 보이는 승객들을 지나치다가 20대로 보이는 한 무리의 남자들을 마주쳤다. 그들은 영국에서 태어난 아랍계 사내들로 보였다. 우리가 그들 쪽에 가까워지자 그들 중 곱슬머리의 남자가 말했다. “오유오유 여기 앉아!”라고 하며 자기 무릎을 가리켰다. 나는 반응하는 게 피곤해서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앞에서 걷고 있던 내 친구가 잠시 멈추더니 그들을 보며 한 마디 내뱉었다.

“와우!(Wow!)”

그 말에 나와 그 남자들 모두 빵 터져버렸다. 그녀는 평소처럼 무심코 뱉은 말이겠지만 그녀의 한 마디는 모두를 무장해제시켰다. 내가 전혀 상상도 못 했던 방식의 대응이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해도 쓸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대응이었다. 우릴 얕잡아보는 상대를 비꼬면서도, 공격적이지 않고 한없이 여유로웠다. 


 친구가 떠난 뒤에도 캣콜링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친구의 ‘와우’ 방법을 기막히게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똑같이 따라해본 적은 없다. 그런 남자들에게 그런 짧은 반응을 보이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다행히 요즘엔 소음차단이 가능한 이어폰을 끼고 걸어서 캣콜링을 ‘의도치 않게’ 무시할 수 있다. 이제는 캣콜링을 지나가다 맞을 수 있는 새똥으로 여기기기로 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다. 이런 수준낮은 사람들을 상대하기엔 내 에너지가 너무 아깝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가장 최근에 겪은 캣콜링에서는 욱하고 말았다. 2021년 겨울, 런던에서 밤에 걸어다니는 여성을 타겟으로 한 범죄가 두 차례나 일어났다. 심적으로 많이 불안한 상태였다. 마침 늦은 밤 길을 걷고 있던 내게 차를 천천히 몰면서 아랍계 남자가 말을 걸었다. 순간적으로 무서움과 분노가 동시에 들었다. 사실 그가 뭐라고 말을 걸었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그 남자에게 ‘뭐!(What!)’라고 크게 소리치고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버렸다. 그는 내게 뭐라고 하더니 엔진으로 크게 성내며 사라졌다. 당시엔 나 스스로가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잘못했으면 큰일날 뻔한 행동이었다. 무시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땐 그들에게 휘말려버린다. 무시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더 현명한 방법은 없을까 고민 중이다. 혹시 방법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내게 귀띔해주시길.




혹시 런던에 살 예정이신가요?

<런던 생생정보통> 한 번 읽어보세요!

https://kmong.com/self-marketing/552353/2DVS16Dh0C

매거진의 이전글 외국인과 찐친이 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