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내 영혼의 단짝을 만나다
‘외국인과도 한국 친구만큼 친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영국으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으로서 의문이 들었다.
언어와 살아온 국가가 달라도 그게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100% 예스다. 영국에서도 친한 친구들은 한국인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엔 외국인도 몇 명 있다. 특히 올리비아와는 웬만한 한국 친구들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이다.
올리비아는 검은색 긴 머리에, 짙은 쌍꺼풀이 있는 큰 눈에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가 매력적인 대만 친구이다. 올리비아와는 한국친구 예나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영국에 간 초기에 예나와 함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놀러간 적이 있다. 그때 예나는 올리비아와 팅키를 데리고 왔다. 그 셋은 영어공부 모임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대만인 올리비아와 홍콩인 팅키는 둘 다 같은 동양인이라 정서적으로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올리비아와 이렇게 친해질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잠깐 베를린에 간 적이 있다. 영국 취업을 준비하는 배고픈 신세였기에 돈을 아끼고 싶었다. 그때 올리비아는 베를린에서 독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머물고 있었다. 많이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조심스레 숙소를 함께 쉐어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렇게 올리비아가 머무는 숙소에서 보름간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근데 이 친구... 알면 알수록 나만큼 엉뚱하고 모험심이 강했다. 나보다 더 잘하는 것도 있었는데 그건 바로 요리! 아침에 일어나면 슬라이스 치즈를 넣은 스크럼블 에그, 구운 감자와 소시지를 만들어주었다. 내가 한 것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그녀에게 한층 더 좋아졌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베를린을 돌아다니면서 웃긴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무더운 날씨에 몸을 흐느적거리면서도 꾸역꾸역 빈티지 마켓과 클럽에 갔다. 심지어 데이팅 어플로 각자 데이트 상대를 구해서 2:2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어느덧 외출하기 전 신발장 앞 거울에서 같이 오징어춤을 추며 깔깔거릴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공통점이 많았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 왔다가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만료되서 영국을 떠나게 된 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영국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점, 데이팅앱에 중독되어 있는 점까지... 모험심은 강했지만 둘다 유럽에서 흔히 피우는 대마초는커녕 술담배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파티나 벼룩시장 등 즐길 거리를 찾아다녔다. 처음에 낯을 가려서 그랬지 알고보니 올리비아는 나랑 정말 잘 맞았던 것이다. 연애상대와 마찬가지로 친구도 재미와 안정감 둘 다 갖춘 사람들은 드물다. 내가 친해지고 싶었던 쿨하고 개성있는 유럽 친구들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동양친구들은 안전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서 막 재밌지는 않았다. 그런데 재미도 있으면서 함께 있으면 너무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친구가 생기다니!
그때 이후로 우리는 런던, 베를린, 타이페이, 바르셀로나 등 여러 곳에서 만났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는 취업비자를 받아서, 올리비아는 영국남자와 결혼해서 둘다 런던으로 돌아왔다. 거의 10년동안 알고 지냈지만 같은 곳(영국)에 있던 시간은 고작 3, 4년에 불과하다. 그 시기에 코로나가 터져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틈날 때마다 만났다. 하지만 2021년 겨울 나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올리비아는 런던에서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날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수많은 이동을 하며 많은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했지만 이렇게 눈물을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2년이 흘러 올 여름 내가 영국으로 놀러갔을 때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우리는 크로아티아로 함께 여행을 갔고, 올리비아아가 마련한 아름다운 집에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시 헤어져야 할 때 우리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무래도 올리비아는 내 소울메이트인 것 같다. 나는 종종 올리비아에게 말한다.
‘너가 남자였으면 바로 사귀었을 거야!’
‘미안하지만 난 이성애자야’
‘나도거든~’
올리비아를 통해 언어와 국가가 달라도 서로 비슷한 에너지에 공통점이 많다면 찐친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올리비아와 나 둘다 고국을 떠나 홍길동처럼 이곳저곳 참 많이 돌아다녔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어디에 있든 늘 만났다. 서로 마음이 연결되니 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보다 더 가까운 느낌이 든다. 여전히 우리는 가끔 통화를 하며 근황을 주고받는다. 영국에서 외국인으로서 불안정한 시기에 만나 일과 사랑에 대해 함께 울고 웃었다. 올리비아가 이제는 결혼하여 좋은 집에서 강아지와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앞으로도 마음씨 따뜻한 이 친구와 인생이라는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
혹시 런던에 살 예정이신가요?
<런던 생생정보통>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