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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담채에서 드로잉을 하다.

by 수수

제주도에는 아기자기한 체험장소가 참 많다. 서담채라는 곳도 그중의 한 곳이다. 서담채는 딸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독서 모임, 영어 공부 모임, 쿠킹 클래스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열리는 공간이다.


3월 25일 토요일, 서담채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 나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배우는 드로잉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오전 10시에 시작이라서 부랴부랴 서둘러 갔다. 길가 1층에 자리 잡은 공간은 좁았다. 한 쪽 벽이 책으로 빼곡히 채워진 공간은 차분하고 섬세한 느낌이 들었다.. 중심에는 긴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고,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각각 7명 정도가 앉아 있었다. 전부 다 젊은 여성들이었다. 나와 다른 나이의 젊은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에 살짝 긴장되었다. 젊은이들 앞에서 어른의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이곳에 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새로운 소재를 통해 나 자신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는 것, 또 한 가지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수업이 시작되고 소프트 오일 파스텔을 사용하여 색칠 연습을 했다. 크레파스와 비슷한 질감이지만 더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색 3가지를 선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색들을 칠해 보고, 연필로 스케치한 후 미리 고른 3가지 색을 이용하여 색을 입혀 갔다. 살짝 긴장되었지만, 특히 색을 고르면서 이색 저색 칠해 볼 때는 어린아이처럼 행복했다. 정성껏 하나하나 색으로 채워가며 완성될 작품을 기대하게 되었다.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는 마음의 작은 부담이 살짝 생기자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조바심 내지 말자. 다 못해도 돼. 잘하지 못해도 돼. 지금 내가 행복하고 좋은 시간 보내면 되는 거야. 다 할 수 있어.'


그림의 주제는 봄을 담은 자동차가 달리는 그림이다. 도화지의 아랫부분 가운데에 자동차가 그려져 있고, 자동차 위로는 도화지 전체를 원 모양으로 감싸며 꽃과 꽃잎들로 채워져 있다. 화사한 봄의 꽃들을 가득 담고 달려가는 자동차 안의 모습이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하게 된다. 참여한 모든 분의 색과 그림의 느낌이 다 달라서 신기했다. 어느 분은 자동차를 빨간색으로 칠하여 젊고 패기가 넘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자동차 그림에 창문도 그렸는데 고양이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같은 시간에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그려 넣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다 끝나고 각자의 그림을 들어 보였다. 같은 디자인으로 색칠만 다르게 했을 뿐인데 그 색으로 인하여 그림을 그린 각각의 주인의 정서를 다 담고 있는 듯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 젊은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색이 특별하듯이 다른 사람들이 고른 색들도 특별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차분하게 자기 내면을 잘 돌봐주는 시간을 갖는 젊은이들이 귀하게 느껴졌다. 도화지에 그린 그림처럼 젊은이들이 늘 소망을 품고 아름다운 삶을 이루어 가기를 바라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스케치하고 색칠을 한 것처럼 나의 인생도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 속에서 정성껏 스케치하듯이 살아가야겠다. 색이 살짝 틀을 삐져 나갔어도 그림을 버리지 않고 완성하려고 노력한 것처럼 삶도 그렇게 살아내야겠다. 나의 인생도 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담아 가며 운행하고 싶다.


서담채에서의 드로잉 시간은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마음을 키워 주었다.


내 작은 방안 벽에는 그림 세 작품이 있다. 두 작품은 딸과 함께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이다. 딸과 갔던 곳에서는 서담채와는 다르게 오로지 우리 둘만의 공간이 된 화실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바닷가의 저녁노을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가는 그림은 딸이 그린 것인데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딸이 그림을 그리던 그 상황이 그대로 떠올려져서 마음이 행복해진다. 벽 한편에 놓여 있는 그림은 벌써 그때 그 시간과 공간 속에 있었던 상황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올려지게 한다.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동안 이렇게 작은 공간을 활용하여 멋진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찾아 다니며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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