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글을 길게 써보기를 제안받았다.
말을 계속 늘어놓다가 깊어진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 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보니 나 또한 짧은 호흡의 글만 있는 책보단, 한 이야기당 서너 페이지를 채우는 산문집이나 아예 한 권을 채우는 소설을 더 즐겨보는 것 같다. 뭐랄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첫 문장에서나 혹은 글의 중간에서 이미 알아챘지만, 작가가 늘어놓는 그 사사로운 문장들을 읽다 보면 결국 이야기의 끝까지 눈을 놓지 못하는 매력이 있달까. 그 문장 속에서 알아낸 사실들이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독서가 더 흥미롭게 진행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이 사람과 술을 한 잔 하다 무심결에 튀어나온 비밀 이야기에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보채지 않고 더 깊은 말을 이끌어내려는 것처럼 말이다.
긴 글쓰기를 시도해본 적이 있었다. 사실 여러 번.
기승전결의 짜임새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솔직하게 쓰고
계속 지웠다. 쓰는 양보다 지우는 양이 더 많았다.
왜 이렇게 긴 글이 힘든 것인가. 왜 진도가 안 나갈까. 어떤 행위에 대해서 즉흥적으로 찾는 이유가 늘 정답은 아니겠지만, 하나 떠오른 이유는, 아니 핑계는, 내가 솔직하지 않아서이다. 내 글을 구독하는 사람이 1000명을 넘어섰을 때, 한 달간 아무런 글도 쓰지 못했다. 내가 글을 올리면 누군가 본다는 걸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다. 글을 읽는 사람의 힐링이나 공감보단 나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글을 써왔던 터라, 그 수많은 눈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 공감을 찾으러온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많이 낯설었다. 공개적인 곳에 올라가는 글이라는 걸 아주 매우 많이 신경 쓰면서 글을 쓰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기 위해 내 개인사를 자세히 묘사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게 됐다. 굳이 알릴 필요도, 읽는 사람이 알 이유도 없을 거 같아서, 그리고 솔직하기 싫어서.
그랬던 내가 왜 굳이 그 힘든 일을 시작하려 하냐면,
첫 그림 에세이를 출간하는 과정에서 수백 번도 더 읽은 나의 원고에 지루함을 느껴서라고나 할까.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신이 만든 것을 보면 볼수록 만족도가 떨어진다지만, 이렇게 여실히 불만족을 느낄 줄이야. 어떻게든 개인사를 뺀 짧은 글에 공감을 넣으려고 애썼지만 공감이 되더라도 솔직하게 늘어놓은 하나의 이야기만큼 읽은 후의 여운까지 책임지기엔 약한 것 같았다.
그래서 긴 글 쓰기를 연습하려 한다.
수수하다를 2년 넘게 하며 글을 업로드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고 드러내는 솔직함에 철판을 깔 준비도 된 것 같아서. 무엇보다 새로운 건 늘 재밌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그래도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