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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하다 Jun 26. 2016

애인 있는 남자

2013

말로만 듣던 골키퍼 있는 골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을 방패 삼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위험하지만 위대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도전의 씨앗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뿌리 채 뽑아버리기 전에 아예 뿌리를 내리지도 말자며 다짐한 지 3일도 채 지나지 않아

그에게 계속 연락이 왔고

물을 주고 있는 나를 봤다.


햇빛을 보지 말아야 해...

물을 먹고 속은 자라나더라도 밖으로 자라 싹이 되진 말아야 해

그렇게 땅 속 어둠에서 혼자 자랐다가 혼자 시들어야만 해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매일 해는 떴고 볕이 들었다.





정신 차려야지 할 때마다 페북에 들어가 그녀와 함께한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불과 이십여 일 전 달달했던 그들에게 내가 이럴 수 있나 죄책감이 든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이 한심해지는 반면, 

한 켠으론 원래 이렇게 만나다가 저렇게 시작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누가 먼저든 연락은 매일매일.

더 이상 서로 떠보기는 없는 것 같다.

잘해주고 싶고 배려하고 싶다.

그렇게 이미 뿌리는 자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짙은 갈색의 흙더미 위로

초록색의 무언가가 살짝 솟아오른다.





앞 뒤를 보지 않는다.

하나만 빼면 완벽하게 서로 호감을 느끼는 남녀일 뿐이다.

썸도 타고 밀당도 하며 서로의 선톡에 마냥 기쁜...

그러나 그 하나가 전부를 좌지우지한다.


앞뒤를 묻지 않는다.

따지고 따지면 안 될 이유밖에 나오지 않을 것을 둘 다 너무나도 잘 안다.

서로 어찌할 줄 모르지만

현재 어쩌고는 있는 위험함이다.


안 되겠다 더 이상.





선을 그었다.

선긋기는 처음이라 그에게 상처일까 봐 겁난다.


이제 다시 당당한 사랑하리다.

마음껏 사랑을 표현해도 미안하거나 두렵지 않은 사랑!




그것은 어둡고 깊은 곳에 있다.

존재하지만 손에 닿지는 않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안쪽에 있어, 누구도 볼 수 없지만

누구나 쉽게 상처 줄 수 있는 약한 것이다.

불을 환히 밝히다가도 훅, 꺼질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것이 내 마음이다.


-문득 외로운 집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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