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D+3 (10/11 Sat) Zubiri – Pamplona, 22Km
7시 20분 아직 미명 속에서 길을 나서다. 어둠 속에서 길을 가늠하느라 더딘 진행. 일출은 8시 16분으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9시쯤 되어서야 여린 금빛 햇살이 대기에 가득 차 오른다.
또 걷는다. 걷고 오르고 내려가고의 반복이다. 몸 상태는 여전히 고통 일반이다. 며칠 더 이렇게 걸으면 몸이 할 수 없이 적응하겠지. 그런데 당장 힘든 건 어찌할 수가 없다. 프랑스길 800Km 구간에는 크고 작은 마을이 170개 가량 있다는데 그래서 하루에 네댓 개의 마을을 지나게 된다. 대부분 아담하고 고운, 그리고 조용하고 고색창연한 마을들이다.
오늘 여정은 중간 경유 마을에선 가게도 카페도 거의 보기 힘들어 쉬지 않고 걸어야 했다. 그냥 걷는다. 우르다니스(Urdaniz) 에서부터 아레(La Trinidad de Arre)까지 이어지는 산길 10km. 그야말로 몸이 망가지는 소리가 들린다.
남들은 참 쉽게 걷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나만 이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살아온 지형의 문제인 듯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대평원, 프레리(Great Plains) 지역에서 오래 살다 보니 경사각 근육을 잃어버린 것 같다. 산길을 제대로 걸어본 게 얼마만인가. 이 근육을 살리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다 – 아,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 노래도 부르고 “산길을 간다 말없이 홀로 산길을 간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혹은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나르는 새처럼” 같은 온갖 노래를 불러본다. 노래가 날개가 되고 다리가 되어줄 수 있다면!
마침내 산길이 끝나고 아레(Arre)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팜플로나 광역권에 속하는 모양으로 도회적인 거리가 이어진다. 팜플로나까지 5Km, 길가에 늘어선 상점에서 오렌지 주스를 하나 사고 어제 알베르게에 놓고 온 모자 대신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모자도 하나 샀다. 또 약국에 들러 소염진통 연고도 챙긴다. 도시의 소음 번잡 속에서 오직 노란 가리비 표시만 바라보고 걷는다.
드디어 팜플로나(Pamplona) 도착. 팜플로나는 나바레 (Navarra) 주의 주도, 인구 20만 명 남짓한 Camino 선상 최대의 도시다. 기원전부터 존재한 유서 깊은 도시로, 그 이름은 로마 공화정 말기 삼두정치의 일원이었던 폼페이우스(Pompeius)에서 유래한다. 세르토리우스 전쟁 (로마의 귀족이자 법무관 Quintus Sertorius 는 당시 독재자로 전횡을 휘두르던 술라를 상대로 내전 발발,에스파니아까지 전역 확대, 폼페이우스와 대치 끝에 끝내 암살됨) 당시 그가 이곳을 숙영지로 삼은 것이 도시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숙소인 헤수스 이 마리아(Jesús y María) 알베르게까지는 다시 한참 비탈을 올라가야 했다. 대성당 바로 옆에 자리한, 아주 큰 공립 알베르게다.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11유로. 식사는 각자 해결이다. 지금 보니 , 저녁 식사를 포함해 순례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주는 작은 사립 알베르게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젊은 친구들 도움을 받아 세탁-건조기를 이용 빨래도 완료. 아주 기분이 쇄락(灑落) 해 졌다. 내일은 팜플로나 대성당을 둘러본 뒤, 날이 충분히 밝은 후에 늦게 출발할 생각이다. 몸상태를 보면 어디까지 걸을 수 있으려나 하는 아득한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