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라 (Navarra) 의 황금벌판
D+7 (10/15 Wed) Los Arcos - Viana 19km
아침 여덟 시 출발. 점차 길에 몸이 익어 가는 것 같다. 배낭을 꾸리는 손길도 빨라지고, 물병은 왼쪽, 선글라스는 겉옷 오른쪽 이런 식으로 질서가 잡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던 온몸의 근육들도 마침내 순응 모드에 접어든 것 같다.
첫 마을 산솔(Sansol)까지 6km 전진. 두 번째 마을 토레스 델 리오 (Torres Del Rio)에서 커피 한잔으로 숨을 돌린다. 여기서부터 세 번째 마을 비아나(Viana)까지 12km, 인가 하나 없는 구릉길, 황금 벌판이 이어진다. 그 다음은 리오하 (La Rioja) 주로 들어가 로그로뇨 (Rogrono)까지 다시 10km 다. 달콤한 오후의 휴식을 위해 오늘은 비아나까지 걷고 쉬기로 했다.
오늘 처음으로 Camino에서 한국 청년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There’re so many many Koreans on the Camino”라고 좀 과장된 추임을 내는데 (왜 그럴까?) 나로선 오늘 첫 조우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갭 이어(Gap year) 기간에 유럽을 여행 중이라고 한다. 참으로 행복한 세대다.
한국에서는 해외 여행자유화가 1989년 부터 풀렸으니 우리 젊은 시절 때만해도 "해외" 는 멀고도 슬픈 꿈이었다. 중학교 시절 영어 교과서 표지로 나온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 이 우리가 상상할수 있는 해외의 지경(至境)이고 극치(極致) 였으니. 그토록 아득히 먼 그 곳이었기에 언젠가 그 곳 베를린에서 만나자고 친구들 끼리 약속을 하곤 몇번을 다짐 했었으나 기어코 그날이 왔고 어른이 되었고 약속은 잊혀진 채 또 세월이 한참 흘렀다.
Camino 에서 본 청년들처럼 우리네 학창시절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했다면 아마도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것만 같다. 꿈처럼 어쩌면 남미 땅끝 파타고니아까지 내려가 낮에는 낚시를 하고 밤에는 시를 쓰는 나그네가 되었을 수도. 혹은 싱안링 (興安嶺) 산맥 언저리에서 오로촌 쏠론 부족과 수렵의 날을 보내고 있을수도. 생각컨대 항상 미련은 후회보다 더 강력한 감정인 듯하다 - 아하!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그 청년과는 비아나까지 함께 걷다 그는 로그로뇨 까지 간다고 하여 작별. “Good Luck 민찬!”
오늘 로스 아르코스를 출발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이들 중 대부분은 비아나에서 숙박하고, 젊은 사람 위주로 약 30% 정도가 로그로뇨까지 계속 걷는 듯하다. 1시 20분, 비아나 (Viana, 인구 4,000명) 도착, 쉴 생각을 하니 맘이 푸근해졌다
첫눈에 보이는 알베르게 체크인. 샤워를 마친 뒤 약을 사러 나섰는데, 시에스타(siesta) 시간으로 약국은 오후 5시가 넘어야 문을 연단다. 이 동네는 아직도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이어지는 시에스타를 철저히 지키는 모양이다. 마을의 오후는 고요하기만 하다.
문이 열리자 약사를 만났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약사라면 간단한 영어 정도는 통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네. 챗GPT로 찾아둔 약 이름을 보여 주었는데도 영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약을 먹어 보면 알겠지.
일찍 저녁을 먹고 쉬고 싶었지만, 대부분의 식당은 7시나 8시가 되어야 문을 연단다. 마을을 한 바퀴 돌다 6시를 조금 넘겨 문을 연 식당을 발견했다. 영국에서 온 부부와 합석했는데, 제법 연세가 들어 보이는 남편이 내 나이를 묻더니 쑥스러워한다. 자기는 예순둘이라고. 난 당신이 쉰둘로 보였다고 하여 다 같이 웃고 만다
동네를 한 바퀴 더 산책하고, 밤 8시가 넘어 귀숙. 침대가 많이도 비어 있는 걸 보면 젊은 친구들은 아직도 카페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이다. 하루가 이렇게 저물었다.
비교적 평온한 하루. 감사.
오늘 밤엔 기침이 나오질 않길.
여기서 산 기침 감기약, 타이레놀 두 알씩 먹고 취침.
Good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