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에서
옛날(!) 학창 시절 구로에서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 경부선 철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구로와 가리봉 사이의 쪽방촌. 지독한 가난의 그림자가 아직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80년대 초반, 공단 인근이 다 그랬듯, 온갖 남루(襤褸)와 불행과 슬픈 사연이 기차의 굉음과 함께 소란스러웠던 그 곳.
서너 명만 들어서도 칼잠을 자야 했던 벌집 쪽방, 사방에 넘쳐 나던 지친 표정의 여공 무리, 온갖 것들이 둥둥 떠다니던 하수 개천들, 사이렌과 확성기의 소음, 때를 가리지 않는 고성과 드잡이, 그리고 황폐함 - 수년전 아이티의 빈민가에서 본 그 절절한 모습에 다름 아닌.
항상 주위를 살펴야 했던 탱탱한 긴장감. 불행을 자양으로 해서 부유하던 말의 성찬(盛饌), 끝없는 논쟁, 지향 불분명한 희망, 그리고 동지들. 그리고 - 오랜 망각.
얼마 전 서울에 들렀을 때,, 이제 한 세월이 지나 완연히 달라진 구로 어드메서 친구와 술을 마셨다.
그 옛날 사연 품은 구로공단은 ‘구로디지털단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고 가리봉역은 ‘가산디지털단지’ 같은 팬시한 문패로 갈아탔다. 정(正)히 상전(桑田)은 벽해(碧海) 되었다.
쪽방과 시궁의 남루는 삐까번쩍 고층빌딩으로 바뀌고, 거리엔 이쁘게 성장(盛裝)한 처녀 총각들이 길을 메워 은성(殷盛)한 주점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 모두들 "잘" 살고 있었다.
빛이 흐르는 거리 한켠에서 술을 마시며 그 한 철을 같이 보낸 친구들 근황을 듣다 문득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났다.
아직 노동판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는 친구,
(Political Correctness로 표현하면 아직도 꿈을 추구하는)
형편이 여의치 못해 제때 치아 치료를 못 받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더라는 친구,
(같이 시작해 고관대작이 되고 부자가 된 친구들 보다 더욱 희극이 되어버린)
같은 길을 걷는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전혀 다른 세상의 언어로 사이가 뜬 친구들,
그리고 세상을 먼저 등진 친구들.
이제 어정쩡한 모습으로 길 위에 멍하니 서 있는 내 모습.
신기루 같은 가슴 아픈 옛 기억들에 너무도 가슴만 아려왔다.
밤 늦게 공단길을 친구랑 취한 걸음으로 걸으며 예전 이 거리에서 꽃 피워 보려고 했던, 그리고 이미 우리 곁을 떠나 희미해져 버렸으나 지금은 너무도 화려한 다른 모습으로 공중에 떠 있는 “옛사랑”을 떠올렸다.
"예전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이 흐르는 축제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무릎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녀는 맛이 썼다.
그래서 욕설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항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랭보 Arthur Rimba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