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色卽是空)
상실(喪失) 혹은 결핍(缺乏) 이 더 큰 열망을 자아내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황반변성이란 고약한 안질(眼疾)로 시력이 꽤나 불편해진 뒤로 오히려 “본다”는 것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해진 듯하다.
시간 여유가 될 때 읽을 요량으로 사 둔 책이 한가득인데, 그리고 이제야 제대로 읽고 쓰고 하는 시간을 가지려는 시점에 이런 불편한 상황이 되어 버리니 마음이 참으로 착잡하다 - 이처럼 우리네 삶은 부조리 (不條理 = absurdism)의 틀을 벗어나기 힘든 것인가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본다"는 것에 의지해 평생을 살고 있으며 시감각(視感覺)을 밤낮으로 이토록 혹사하여 "안다"라고 하는 지적 만족을 추구하나 이들이 우리의 존재와 사유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솔직히 알 수가 없다. 책장에 쌓여 있는 아직 보지 못한 책들을 다 읽는다고 해서 어떤 버번쩍한 열반(涅槃)의 깨달음을 가질 수 있을까
인류문명이 출현하고 기록이란 게 축적되기 시작한 이후 2000년 초반까지 약 5,000년 동안 인류가 생성한 정보의 총량이 약 20 Exabyte (10의 18 승, 1 엑사바이트 = 10억 기가바이트, 1TB 하드디스크 100만 개 용량)라고 하는데 2021년 한 해에 생성된 전 세계 데이터 총량이 약 79 Zettabyte (10의 21 승), 2025년 생성 총량은 175 Zettabyte (=480 Exabyte per Day)라고 하는 추산이 있다.
곧 오늘날 하루에만 인류가 이천 년대 초반까지 5,000년 동안 생성한 지식 정보의 약 24 배를 (아마 세월이 갈수록 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다) 똑딱 뚝딱 만들어 인류의 눈과 귀에 흘려보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우리가 희랍 로마시대 혹은 르네상스, 가까이는 20세기의 인류보다 더 현명하고 지적으로 행복해진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이미 감당 못하게 폭발한 정보의 바다에 풍덩 빠져 지식욕과 호기심을 충족하는 책과 인터넷을 종일토록 찾아다니는 것은 마치 마셔도 마셔도 갈증만 더하는 바닷물을 끊임없이 들이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설적으로 우리 수감각(受感覺)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각視覺이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제한된 시각 장애자분들이 오히려 정상 시각자 보다 훨씬 영성이 깊은 경우가 많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육신의 눈 대신 내면의 시선과 감각을 이용할 때 비로소 천지자연의 참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사의 영성을 가질 수 있었다는 간증도 도처에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색즉시공 (色卽是空)이니 우리가 많이 보고 많이 아는 것이 허상임을 받아들이는 데서 깨달음이 시작되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눈에 비치는 만물만생(萬物萬生)의 허망한 색 (色)의 희로애락을 참으로 오래도록 좇아 살아왔다.
자꾸 피곤한 눈을 감다 보니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작아지고 자꾸 내 안에 있는 여러 생각이 차 오른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길 - 그 옛날 내 꿈에 남았는 그 길들의 모습이 문득 화안하게 떠 오르고 산과 초원과 강물 그리고 사막이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이제야 가만히 눈을 감고 내 속에 있는 더 큰 세상에 귀 기울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