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긴 필름으로 복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20대에는 왜 그리도 많은 술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술이 세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 믿고 앉은뱅이 술을 연거푸 먹다가 취해버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도 필름이 끊기는 일은 많지 않았는데, 한번 호되게 당한 후로는 취할 때까지 먹는 걸 자중하게 되었다.
밥벌이 때문에 급하게 입사하게 된 회사였다.
전임자는 이미 퇴사한 상태였고, 인수인계 해줄 사람이 옆자리의 대리님뿐이었는데, 문제는 그분이 너무 바쁘다는 것이었다. 그 부서의 막내인지라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는데, 그 시간을 쪼개어 나에게 업무를 알려주려고 할 때마다 일이 또 몰려들고 전화가 울려대는 바람에 번번이 인수인계는 끊기고 말았다. 뭘 알아야 돕기라도 할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화가 오면 담당자에게 바꿔주는 것뿐이었다.
얼마 후 전화 업무 외에 나에게 할당되는 일이 생겼다. 바로 점심 메뉴 취합과 예약이었다.
그 부서에서는 점심시간마다 회사 건물 바로 앞에 있는 아케이드 내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12시 전에 식당을 정하고 메뉴까지 취합해서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건가 보다 했다.
부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매일 바빴다. 점심시간이 임박해서 메뉴를 물어볼라치면 전화가 왔고 회의를 했고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업무에 방해될까 봐 회사 메신저로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함흥차사여서 언제 내 메시지를 볼지, 보기는 한 건지 미어캣 마냥 파티션 너머로 눈치를 봤다.
어떤 때는 직접 물어보려고 자리에 갔는데 그 순간 전화가 와서 내내 옆에 서있던 적도 있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통화가 길어졌고 내 자리에 갔다가 다시 오자니 그 사이에 또 다른 통화로 말할 타이밍을 놓칠까 봐 이도 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로 서 있었던 셈이다.
통화가 끝나고 그제야 나에게 무슨 용건이냐고 묻는 이에게 뭐 드실 거냐고 말하는 순간,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한 시간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묻는다는 게 고작 점심 메뉴라니... 이것도 업무의 하나라고는 하지만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이후로도 인수인계는 좀처럼 연장되지 못했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전화만 연결했으며 11시만 되면 메뉴 취합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따로 먹더라도 취합과 예약은 해야 했다.
그렇게 2주가 흐르고 첫 회식을 한다고 했다.
1차는 고깃집이었다. 나는 술 중에서 소주를 유독 잘 못 먹었다. 1병가량 먹을 수 있었지만 그게 최대치였고 취하거나 필름이 끊긴 것도 대부분 소주를 많이 마셨을 때였다.
그래서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부서 사람들은 당연한 듯이 소주만 주문했다. 내가 조심스레 맥주를 말하자 사람들은 소주잔을 건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부장님이 주는 잔은 부장님이니까 받았고, 그다음 사람들이 한 잔씩 따라주는 건 첫 잔이니까 받았다. 그러고 나니 벌써 1병을 다 마셔가고 있었다.
부서 사람들은 대체로 적당한 예의를 지켜줬지만 차장님만은 날 선 태도로 뾰족하게 굴어서 안 그래도 어려워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차장님이 두 번째 잔을 건네는 것이었다. 주량이 약하다는 내 말에 기억도 나지 않는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마셨는데, 어느 순간 영사기의 필름이 끊어진 것처럼 기억이 탁 사라져 버렸다.
눈을 뜨니 다행히 집이었고 아직 출근시간 전이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두드려 맞은 것처럼 온몸이 너무나 저릿하고 쑤셨다. 몸살도 이것보다 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몸 안팎으로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최소한의 세수만 간신히 하고 출근 준비를 하는데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 입었던 외투를 살펴보니 곳곳에 먼지와 오물이 묻어있었다.
그 순간 파편적인 기억들이 떠올랐다. 사람들과 택시를 타고 골목길 앞에서 내렸던 것과 내가 동네 어딘가 땅바닥에 앉아있던 기억 등이었다. 가방을 어딘가에 흘린 듯한데 그 와중에 용케도 휴대폰과 열쇠는 챙긴 모양이었다. 더 찾아보기에는 출근시간이 임박해서 서둘러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쉬고 싶었지만 2주 차 신입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출근하자 부서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출근해 있었다. 어제의 술은 나 혼자 다 마신 기분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2차로 맥줏집에 갔다는 말도 들었다.
우리가요?
2차도 갔다고요?
맥주를 먹었다고요?
어쩜 내게는 2차 맥줏집에 대한 단 한 장면의 기억도 없었다.
충격이 한바탕 지나간 후 정신을 차리고 잃어버린 가방에 뭐가 있었는지 찬찬히 떠올렸다. 걱정되는 건 지갑과 아이패드 그리고 10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었다. 아이패드와 상품권은 아까웠지만, 지갑 안의 카드가 여러 개라 혹시라도 도용당하거나 하면 안 되니 우선 분실신고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사마다 전화를 하는 도중, 한 군데에서 내 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신고했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택시 기사였다. 그분이 내 가방을 갖고 있고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싶었다.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에 주차된 택시에서 기사님을 만났다.
내가 자초지종을 물어보자 그분은 이렇게 설명했다.
회식이 끝난 후 택시에 탄 부서 사람들 중 나를 가장 먼저 내려줬단다. 필름이 끊긴 와중에 집은 어떻게 설명했는지 나 스스로가 신기했다. 그런데 내가 내리면서 가방을 두고 내린듯했다. 마지막 사람을 내려준 직후, 젊은 남학생 두엇이 탔다고 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내릴 때 가방을 들고 내리려고 했는데, 기사님이 이상함을 감지했다.
쟤네 탈 때는 빈손이었는데?
그걸 지적하며 이상하게 여기자 남학생들은 우물쭈물하며 가방을 두고 내렸다고 했다.
그들이 간 후 가방을 살폈는데, 연락처 같은 게 없어서 지갑 안의 카드를 보고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게 연예계 준비 같은 걸 하냐고 물어봤다. 살면서 처음 듣는 뚱딴지같은 말이라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아이패드를 봤는데 사진이 이것저것 많아 궁금해서 물어봤단다.
이런 일이 생길 줄 모르고 귀찮아서 비번을 걸어놓지 않은 게 실수였다. 왜 남의 것을 함부로 보는지 기분이 나빴지만, 어쨌든 내 물건을 돌려주는 것이었으므로 일단은 참기로 했다. 동시에 순간적으로 아이패드에 이상한 사진이나 개인정보 자료가 없었는지 기억을 훑게 되었다.
물건이 다 잘 있는지 가방 안을 살폈는데 상품권만 없었다. 가장 값나가는 아이패드도 그대로인데 상품권만 없다니?
택시 기사를 만나러 나오기 전, 사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탈탈 털어 나온 게 현금 5만 원뿐이었다. 그래도 상품권이 있으니 그것까지 합해서 사례를 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없는 거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기사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아무래도 그 남학생들이 가져간 것 같다고 말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달리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내가 사실은 현금이 이것뿐이라 그 상품권까지 해서 사례를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하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 웃으면서 대답을 잘해주던 기사님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보인 건 내 기분 탓이었을까?
내게서 5만 원을 받고서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 역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혹시라도 뭔가 더 요구할까 봐 겁이 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바로 떠났다. 기사님이 했던 말과 상품권의 행방은 영원히 오리무중으로 남게 되었다.
그날 퇴근하면서 직감적으로 이 회사에 오래 못 다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업무도 그렇지만 회식이 두려워지는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술에 취하고 필름이 끊길 때마다 주위에서 하는 잔소리를 흘려듣기만 했는데 그날따라 폐부에 꽂혔다. 술 먹다가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큰일 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드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날의 교훈 덕분인지 이후 필름이 끊긴 적은 없었고, 아주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아니면 술을 마실 때마다 취하지 않으려고 경계하고 조절한다.
그리고 그날의 예감은 결심이 되었고 나는 한 달도 되지 않아 퇴사를 했다.
술 때문에 필름이 끊긴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몽롱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고 말았다.
그렇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이보다 더 아찔한 밤을 지나왔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기억에 남은 ‘그날 밤’이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