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다시는 바텐더 일을 하지 못했다.
몇 년 전 MBC에서 임현주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나온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별것 아닌 그것이 특이한 일이 된 건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하는 것이 최초이기 때문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접할 때에야 우리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걸 보며 나는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고 상황이 바뀌게 된 어느 한때를 떠올리게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안경을 썼는데, 바텐더 일을 하는 동안에는 렌즈를 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시야가 뿌옇고 불편해서 안과에 갔더니 각막이 부었다면서 한동안 렌즈를 끼면 안 된다고 했다. 가게에 사정을 말해 양해를 구한 후 안경을 쓰고 일했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물어봤다. 그만큼 안경 쓴 바텐더는 희한했던 모양이다.
문제는 며칠 후에 발생했다.
지배인님이 근무가 끝난 나를 부르더니 더 이상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물어도 그냥 그렇게 됐다는 의미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거나 일을 잘 못해서 그런 거라면 첫 달도 못 채우고 잘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3개월을 넘기고 있는 시점이었고, 지배인님을 비롯한 바텐더들과의 사이도 좋은 편이었다. 안경을 쓸 때 이미 허락을 구하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그것 때문인가 싶어서 죄송하다고, 다시 렌즈 끼고 일하겠다고 해도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 자리에서 화가 나는 대신 눈물이 흘렀다. 자르지 말아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것도 억울했지만 그만큼 나는 여기서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단 몇 달이었지만 이 일이 몸에 맞는 것 같아서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 안 된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 할 수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었다.
이후 바텐더 일을 하지 않았다. 자격증이 있으니 그걸 메리트 삼아 호텔 같은 곳에 지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 별로 내키지 않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다가, 내가 원했던 건 바텐더라는 직업 자체보다는 나에게 처음 인상 깊게 각인되었던 그 바 안에서 일하는 내 모습이었음을 깨달았다.
또한 짧게나마 실제로 일해 보면서 내가 생각한 바텐더와 실제는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기도 했다. 내가 바랐던 바는 바텐더와 손님이 술이라는 도구로 다양한 화제의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는 격조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건 영화에나 존재하는 환상에 가까웠다.
섹시 컨셉이라든지 착석 바 같은 이상한 곳도 많았지만, 내가 일한 곳은 그렇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매장마다 다른 특성만큼 오는 손님들의 면면도 달랐다. 어떤 사람은 올 때마다 거짓말을 했고, 어떤 사람은 별것 아닌 호의를 보이면서도 큰 아량을 베푸는 것 마냥 굴었다. 위스키 한 병을 시키며 무례한 사람보다는 맥주만 시키더라도 최소한의 거리와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 좋았지만, 그런 사람은 자주 오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어린 나를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다. 바에 혼자 오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술을 먹으러 오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한정적이고, 바텐더의 입장에서는 이 사람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도 가늠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오가는 이야기는 테이블 위를 겉돌다가 알코올에 흩어지게 된다.
나는 잘린 후에도 웃는 낯으로 다시 손님으로 돌아가 얼마간 그곳을 찾았다. 지배인님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맞아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자존심도 없이 왜 그랬을까 싶으면서도 그만큼 애정을 떼기 힘들었던 것 같다. 좋은 동료를 만나기도 했고, 일을 그만둔 후 친했던 손님들과 밖에서 만나기도 했지만 오래가는 인연은 없었다. 마치 한때는 취했지만 결국 공기 중에 증발한 알코올처럼.
이따금씩 익숙한 이름의 칵테일이나 양주를 볼 때마다 그때가 떠오르지만, 이제는 괴롭기보다는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다.
당시에는 한동안 바에 갈 때마다 저 자리에서 더 일했다면 어땠을까 하며 아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얼마나 더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길게는 몇 년, 서른이나 넘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중년이나 노년의 바텐더를 본 적도 거의 없는 데다 (오너인 경우 제외) 그게 여자인 경우는 더더군다나 없다. 내가 이상적으로 바랐던 바텐더를 아직 만나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바에 가는 것 자체도 이제는 드물어졌고 바텐더에 대한 환상도 더 이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썼거나 나이 있는 여성 바텐더를 보게 된다면 왠지 반가울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
제가 멋모르고 한때 그 자리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당신은 어떤지 궁금하네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