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인구만큼 다양한 사람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진다고들 말한다. 종종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말이 피부로 와닿는다.
거리에서 길을 물으려 해도 입을 떼기가 무섭게 경계의 눈빛과 마주하게 된다. 길 가다 낯선 사람이 나에게 갑자기 다가오는 일이란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경험의 대다수가 이상한 사람이면 상대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방어태세를 갖추게 된다.
나만 해도 기억에 남는 그런 경험이 세 번이나 있다.
가장 오래전 일은 20여 년 전인데, 친구와 지하철 역사 안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던 그곳은 지하상가와 연결되어 있어서 오가는 사람도 많고, 나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사람도 많은 곳이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노트에 이런저런 걸 끄적이며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처음에는 자리가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나를 힐끔힐끔 보는 시선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내 말을 걸어왔다.
학생이냐, 뭘 쓰는 거냐, 친구 기다리냐, 몇 살이냐...
그냥 자리를 뜨면 되는데 당시는 휴대폰이 없던 때였다. 여기서 벗어나면 친구와 어긋나거나 나를 못 찾을지도 몰랐다. 바보같이 어리숙했던 나는 아저씨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대답을 해줬다. 아저씨가 자기 집에 같이 가자는 말을 함과 동시에 친구가 도착해서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한 번은 길을 가는데 어떤 남자 둘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도를 믿으십니까' 부류였다.
처음에는 그들의 정체를 몰랐다가 '도믿'류라는 걸 알아챈 후로는 대답을 안 했는데도 그들은 나를 줄기차게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무려 20여 분 동안이나!
목적지였던 병원 건물까지 따라 들어오길래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도대체 어디까지 따라올 거냐고 정색하니까 그제야 그들은 발길을 돌렸다.
또 한 번은 약속 장소에 가던 길이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내 옆에 서 있던 어떤 여자애가 옷이 예쁘다고 말해줬다. 마침 새 옷을 입은 날이기도 했고 여자애라서 의심 없이 고맙다고 대답했다.
여자애는 어디 가시는 길이냐, 뭐 하는 분이냐 등을 묻더니 자기가 요 앞 교회에 다니는데 혹시 같이 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 순간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치 경보 대회에 나간 것처럼 뛰듯이 걸음을 재촉하며 그곳을 떠났다.
살면서 이런 '도믿'류의 사람들을 누구나 몇 번은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오히려 그들이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해서 일부러 따라간 적도 있다는데, 소심한 나는 감히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의 목표가 향하는 끝이 궁금하면서도 괜히 호기심에 따라갔다가 내 꾀에 내가 넘어가 못 빠져나올까 봐 시도도 안 해봤다.
잇따라 그런 경험들을 하고 나니 내가 만만해 보여서 그러나 싶은 생각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무표정하고 굳은 얼굴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다니는 게 고작이었다. 누군가 다가올 낌새라도 보이면 몇 발짝이라도 멀리 돌아갔고, 그럴 틈도 없이 말을 걸어오면 눈도 안 마주치고 쌩하니 지나쳤다. 개중에는 정말로 순수하게 길을 물어보는 거였는데 오해한 경우도 있었다. 다시 뒤돌아 대답해 주면서 머쓱해지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후 복도에서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어떤 여학생이 다가왔다. 인사도 없이 "과자 드실래요?" 하면서 내민 직사각형 상자에는 과자가 절반도 넘게 남아있었다. 누가 보면 우리가 원래 알던 사이처럼 보일 정도로 여학생의 태도는 자연스러웠다.
나는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그녀는 자기가 다 먹기는 많아서 그러는 거니 가져가셔도 된다며 다시 내밀었다. 연이어 거절하는 것도 멋쩍고 그녀의 의도가 불순해 보이지 않아서 엉겁결에 받고 말았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뒤돌아가는데, 어색하게 건넨 인사만큼이나 기분이 이상했다. 잠시나마 그녀를 경계했던 마음이 미안했다.
내가 아는 지인은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한다. 아는 사람은 물론이고 가끔 보는 이웃에게도 잠시라도 얼굴을 스치면 인사를 건네고,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으면 내다보고 먼저 다가가 뭐 도와줄 거 없냐고 묻는다. 별것 아닌 그 모습들이 처음에는 약간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자주 보거나 친한 사람들에게만 인사했고, 바로 옆이나 아래위에 사는 이웃조차도 집주인처럼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 마주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도 내가 속한 부서 사람들 외에는 인사를 잘하지 않았다. 옆 부서 동생이 언니는 왜 인사를 잘 안 하냐면서 자기네 팀장이 나를 예의 없게 여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창피하지만, 그때는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 했다. 낯선 사람은 무조건 경계 대상이었고 잘 모르는 사람과는 내 쪽에서 먼저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그동안의 내 처신이 부끄러워졌다.
지금도 먼저 다가가고 인사 건네는 걸 잘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그나마 나아진 편이다. 아랫집의 이웃이 바뀌면 먼저 인사하고, 과일 같은 걸 나누기도 하며, 이웃의 택배가 문 앞에 방치되어 있으면 대신 들여다 놓기도 한다.
그러면 얼마 후 내 택배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어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이어지면서 그들은 내게 낯설고 경계할 사람이 아니라 그저 이웃으로 변모해 간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게 별게 아닌데, 내가 먼저 커튼을 치고 문을 닫고 세상을 더 무섭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누군가를 이용하고 해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을 이유 없이 돕는 이들도 있다. 사소하게는 우산을 씌워주거나, 먹을 것이나 차비를 그냥 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교통사고 같은 현장에서 서로 돕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이를 위해 청원을 모으거나 탄원서를 써주기도 한다.
그들의 의도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세상은 모두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다는 가치관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기후 위기나 환경오염에 대처하는 활동 등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기우뚱한 듯 보여도 균형을 잡아가며 굴러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