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건너뛸 수 없다.

산다는 건 점이 아니라 선이므로

by 한수정

밤 10시가 갓 넘은 버스 안에는 퇴근시간처럼 사람이 많았다. 내내 서서 가겠구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잠시 후 자리가 났다. 내 옆자리에는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휴대폰을 쥔 그의 고개가 푹 떨궈져 있었다. 그는 코를 골다가 이따금씩 고개를 들고 다시 휴대폰을 확인했다. 불연속적으로 코 고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의 휴대폰 화면에는 드라마가 지나가기도 했고 스포츠 경기가 지나가기도 했다. 이럴 거면 영상을 왜 틀어놨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줄기차게 졸았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이 데이터만 낭비되는 휴대폰이 애처로워 보였다.


어떤 친구는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 넷플릭스를 틀어놓는다고 했다. 라디오처럼 흘려듣다가 중요한 부분에서는 잠시 시선을 두고 확인했다가 다시 귀로만 들어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뿐만이 아니라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재미없거나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부분은 수시로 스킵하면서 본다. 드라마나 영화를 요약하는 유튜브 채널까지 있을 정도니 어떻게 보면 별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런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보려고 하는 편이다. 반전이 있는 영화의 가치가 반전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러닝타임 동안 집중하고 몰입해서 봐야 진짜 재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득 인생도 스킵하면서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낀다. 뭐 조금 하다 보면 하루가 저물어 있고 일주일이 지나 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고 정신 차려보면 하나의 계절이 그리고 한 해가 끝나 있다. 모든 걸 기억하며 살 수는 없겠지만 작년에 내가 뭘 했는지 생각나지 않는 건 어제 점심을 뭘 먹었는지 가물가물한 것과 비할 바 없이 자괴감이 들 정도로 답답하다.

기록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흘러가는 나의 하루하루가 휘발되기 전에 발자국을 찍는 것. 일기를 쓸 수도 있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작년부터 스킵되지 않는 일상을 살기 위해 간헐적으로라도 기록을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 후 5년 다이어리를 마련했다. 종종 작년 혹은 재작년 오늘 어땠더라 하면서 지난 다이어리나 스케줄을 찾아볼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기가 더 쉬워진 셈이다.


지난 2024년은 나에게 허탈하고 힘든 일이 많았던 데다가 유독 빨리 지나간 해였다. 개인적으로도 힘겨웠지만 국내외 안팎으로도 다사다난했는데, 그 여파가 내년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말이 들린다. 그래도 시간은 멈출 수 없는 것을 어쩌랴. 어차피 살아가야 한다면 한 톨만큼의 희망이라도 손에 쥐는 것이 낫지 않을까?

2025년도 벌써 1분기가 훅 지났다. 벌써 4월이네, 싶은 게 엊그제 같은데 5월까지는 열흘도 안 남았다. 산다는 게 띄엄띄엄 있는 점이 아니라 쭉 이어지는 선인 것처럼 시간도 마찬가지다. 야속할 때가 많지만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나 역시 부지런히 따라 걷는 수밖에...


5년 다이어리를 쓰면서 지난해에는 첫 해여서 비교할 게 없었는데, 올해에는 매번 작년의 오늘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작년과 올해의 차이가 어떠하든 간에 과거의 오늘보다 지금이 어떤 형태로든 더 나아져 있기를 바란다.

새로 시작하는 것 투성이어서 의욕과 부담이 어지러이 뒤섞여있지만, 올해에는 나에게 더 집중하고 나를 돌보면서 나아가고 싶다. 그렇게 내가 나에게 하나 둘 붙여주는 칭찬 스티커를 쌓아 연말에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뿌듯함을 선물로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