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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아토르 May 31. 2017

걷다

걷습니다

계속 걸어왔습니다

얼마의 시간인지 얼마의 거리인지는 묘연합니다

시작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멈춤에서 걷기가 시작되는 것이라면

시작의 기억은 없었던 것도 같습니다

시작 이전의 멈춤이 없었으므로

시작의 순간 또한 없었던 것이겠지요

걸었습니다

걷고 있습니다

혼자 걷지는 않았습니다

함께이지도 않았지만

더러는 나를 앞서가고

더러는 내 뒤에서 따라왔습니다

또 몇몇은 나와 발맞춰 걸었습니다

힘겹게 발맞추던 그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틈엔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을까요

얼마 전까지는 당신이 있었습니다

내 오른발에 당신 오른발도 함께 움직였지요

겨우내 발이 얼어있었습니다

발이 아팠는데

발이 얼어 그랬는지 신발이 불편해 그랬는지

알길이 없었습니다

눈이 녹고나니 그제야 발도 녹습니다

겨우내 발이 얼어있었습니다

걷습니다

걷고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걷는 것은 아니지만

발은 또 맞춰집니다

나는 걸어갑니다

한발한발 걸어갑니다

다음 겨울에 발이 얼어도

그 때도 걷겠지요

그 때는 어떤 발이 함께 언발이 되어 발맞추어주겠습니까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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