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보다는 밤이 낫다
그대와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세상 모두가 잠든 듯한 새벽 4시.
우리는 서로의 손 대신 휴대전화를 붙들고
서로에게 끊임없이 얘기했다.
그리고 그대는 내게 말했다.
그리하여 이 밤, 우리가 이어져 있는것 같다고.
밤은, 그 말을, 그 마음을,
엄지손가락에 담아 꾹꾹 누르던
그대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생각하는
그런 시간임으로.
카페보다는 도서관이 낫다
그대의 손길을 느끼기에는.
얼른 오라 재촉하는 진동벨도 없고
오가는 사람들의 사연 소리도 없다.
서걱서걱 책장 넘어가는 소리.
오래된 종이 냄새.
그대의 길고 흰 손가락이 책등 사이를 쓸다가
마주오던 내 손가락과 부딪힐때,
어느 해 겨울 길을 걷다 잡았던
그 첫 손잡음이 떠오르는 그런 공간임으로.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낫다.
그대와 같은 곳을 바라보기에는.
그대와 겹쳐서서 버스 덜컹임에 손잡이를
꽉 쥐었다 느슨히 쥐었다 반복하며
창밖의 오가는 사람들과
매일 봐도 낯선 이름의 간판들에
눈길을 주는 시간임으로.
그러다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이 다가 올때쯤
오늘의 짧은 여행이 끝남에 아쉬워하며
내 곁에선 그대를 슬쩍 바라보는,
그런 새침한 설렘이 있는 공간임으로.
강남거리보다는 종로거리가 낫다.
당신과 발맞추어 걷기에는.
긴긴 시간동안 수없는 연인들의 입맞춤을 지켜봤을 고궁의 돌담길 옆에서
그대와 나도 그 지난 연인들처럼
영원을 기대하며 들뜨고
수백년전의 인연이 돌고돌아
결국 이 자리서 다시 만난 것이라
그렇게 기어이 순수히 믿게 만들고 마는,
그런 거리임으로.
2016.01.03.